감독들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연출을 한다.
본인만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이거나, 작가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가지고 연출을 할 수도 있고, 원작을 본인이 각색하거나 작가가 각색해 연출을 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봉준호 감독은 주로 자신이 직접 쓴 시나리오로 연출을 하다가 프랑스 그래픽노블이 원작인 < 설국열차 >를 각색해 연출을 하기도 한다. 꼭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아니라도 연출의 영감을 받는다면 어떤 작품이든 마다할 리가 없는 것이다.
성룡의 < 미라클 >은 그런 원작을 가진 작품 중 하나였다.
이 작품의 원작도 재미있는 작품인데, 미국의 유명 영화감독 중 한 명인 프랭크 카프라의 1933년작인 < Lady For a Day >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감독 자신이 이 1933년작이 마음에 안 들었던 지 1961년에 < Poketful of Miracles >라는 영화로 다시 리메이크 한다. 그리고, 성룡은 이 1961년 리메이크작을 원작으로 했다.
프랭크 카프라 감독은 1930, 1940년대의 헐리웃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흥행가도를 달리던 감독 중 한 명으로서 많은 드라마를 만들어냈던 명장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헐리웃이 텔레비젼의 보급과 뉴헐리웃 세대의 급격한 진출 등으로 많은 변화를 겪자 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 < Poketful of Miracles >를 마지막 작품으로 은퇴한다.
그래서 그런지 < Poketful of Miracles >는 1960년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 제작시스템은 철저히 스튜디오 세트 안에서 찍는 1930년대 방식을 따른다. 결국 화면 내의 트렌드에서는 많은 부분이 뒤떨어진 느낌을 주는데 이것 때문에 흥행에서는 그렇게 크게 성공하지는 못한다.
성룡은 이런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연출이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번에 작정을 하고 스튜디오 시스템을 자신의 영화에 도입해 연출하기 시작하는데, 이로 인해 1930년대의 홍콩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당시에 무려 6500만 홍콩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여기에 투입한다. 모두 세트장 값이다. 특히, 주무대인 나이트클럽을 만드는데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런 세트장 촬영은 1930년대 홍콩 분위기를 완벽하게 재현하면서 골든하베스트의 20주년 작품으로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액션이 줄고 스토리가 강화되면서 흥행에서는 크게 성공하지는 못한다.
홍콩에서 극장 매출이 제작비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성룡은 이 영화에서 배우로서 보다는 감독으로서 더욱 역량을 발휘한다. 그래서, 모든 세트장의 디자인과 사람들의 의상, 차량 등 많은 부분에서 거의 완벽하게 1930년대의 풍광을 재현하고, 필요하다면 1920년대의 자동차마저도 (이런 소품이 정말 비싸다.) 폭파시켜버린다.
원작에서는 행운의 사과를 파는 여인이 나온다. 성룡은 이를 장미꽃으로 바꾸고, 나머지 캐릭터들과 이야기 구조는 거의 원작을 따른다. 물론 원작의 초반부의 지루한 부분은 자신의 액션과 갱들의 총격전으로 대체해 보다 역동적인 액션 영화 형식을 취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 영화에서 성룡은 여전히 주연 배우를 하면서 부상 투혼을 발휘한다. 하지만 전작들에 비해 액션 부분은 많이 줄어들었다.
성룡이 신경을 쓴 부분은 나이트클럽 오픈 부분으로 보인다. 그는 이 장면에서 많은 장면을 컷으로 할애해 어떻게 나이트클럽 건물이 완성되고, 부부로 나오는 매염방이 어떻게 클럽의 스타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그 의상이나 화려함은 이 영화의 가장 즐거운 부분이기도 하다.
매염방은 홍콩이 낳은 여러 여자 배우들 중 독보적인 외모와 입담, 그리고 연기, 노래로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던 배우이자 가수였다. 1980년대의 여스타들 중 장만옥은 노래보다는 연기를, 양자경은 연기보다는 액션에 전념했다면, 매염방은 연기보다는 노래에 더 집중한 편이었다.
이런 매염방의 노래와 안무가 멋들어지게 어우러지는 장면이 바로 이 나이트클럽 씬인 것이고, 성룡은 나름대로 이 장면을 의상 변경으로 멋들어지게 시간의 경과를 표현한다. 그러면서 이미 10편 이상의 장편을 연출한 완숙미를 보여주기도 한다.
< 오복성 >에서 같이 출연했었던 오요한이나 누남광도 반갑지만, 당시 홍콩의 유명 배우들이 카메오로 출연을 많이 해서 더 유명한 영화이기도 했다.
장학우가 첫 장면에 나오는 거나, 원표가 거지로 한 장면만 나오는 것도 재미있지만, 오맹달, 임달화가 얼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엑스트라로 나오는 것도 놀랍다. 그리고 이런 카메오를 의도했던 성룡은 분명 액션보다는 영화 자체의 퀄리티에 더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성룡은 순수하게 연출의 힘을 보여주고자 애쓰고 있다.
원작이 있는 영화의 숙명은 언제나 원작과 비교되는 것이다. 그렇게 봤을 때 사실 성룡의 연출은 프랭크 카프라의 연출보다 잘하지는 못했다. 단지 원작의 드라마적인 중요 요소를 따라 하며 감동을 주려했지만, 그 감동도 워낙 코메디로 다루다 보니 희석화된 부분이 너무 많다.
예를 들면 원작에서는 사과를 파는 여인이 거짓으로 만들어진 유명인들의 파티를 딸에게 실토하려 할 때 그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 여러 개의 교차 편집과 여인의 입술에서 나올려하는 단어들을 세심하게 담아내면서 그 상황 자체가 관객들에게 스릴을 주고 그래서, 진짜 유명인들이 입장했을 때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전달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성룡의 < 미라클 >에서는 이 부분이 많이 희석화되어 그런 쫄깃함을 만끽할 수는 없었다. 워낙 액션 위주의 연출을 하는 성룡이다 보니 이런 세심한 연출은 하기 힘들었을 거로 보이기도 하지만 연출로서는 많이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이 영화와 < 용형호제 2 >를 끝으로 성룡은 더 이상 연출을 하지 않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주연만 해도 충분한 성룡이 연출과 주연을 동시에 하면서 목숨을 내던지는 액션을 하니 골든하베스트로서는 꽤나 골치가 아팠기 때문이다. 그냥 성룡의 배우 브랜드만으로도 충분히 알아주는 영화 시장에서 연출하는 성룡은 관리하기만 힘들었던 것이다.
< 미라클 >은 성룡이 연출한 영화 중 가장 평범한 영화 중 하나이다. 액션만으로만 본다면 말이다. 하지만 공간의 창조도 감독의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 부분만 본다면 성룡의 영화 중 가장 뛰어난 영화이다. 이렇게 공을 들여 1930년대의 홍콩을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원작이 있어서 성룡의 영화 중 가장 스토리가 탄탄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 한번 본다면 조금은 애잔하고 잔잔한 성룡을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