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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대하여

by 브레드

저는 학창 시절부터 친구들의 대나무 숲이 되고 싶었습니다.


뒷담화부터 연애사, 가정사까지 친구들이 털어놓는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았습니다. 남들에게 쉽게 꺼내지 않는 이야기들을 마치 고해성사하듯, 일기장에 쓰듯 털어놓는 모습을 보면 괜히 제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것을 어렵지 않았습니다. 질문하고 듣고, 질문하고 듣고 최대한 내 생각과 판단을 제외할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말을 하고 싶은 마음에는 나이도, 직업도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것은, 누구나 두툼한 이야기보따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베일 것 같이 일을 하는 상사도, 무뚝뚝한 어르신도 그들만의 켜켜이 쌓은 보따리가 있었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몇 마디 질문을 건네면 어느새 신이 난 아이처럼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어떤 날에는 정신없이 이야기를 듣느라 '아' '오' '정말요?'만 하다가 헤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바탕 얘기를 듣고 나면, 상대방과 자연스러운 친밀감이 형성됩니다. 분명 교류가 많았던 것도, 오랜 시간을 함께한 것도 아닌데, 마치 이미 알던 사람처럼 편안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털어놓은 사람에게는 알 수 없는 안정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개인화가 점점 심해진다고 하지만, 사람은 여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합니다. 누군가는 글로, 누군가는 노래로, 누군가는 연기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저 역시도 이렇게 글을 쓰며 여러분에게 제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사실 맞습니다.


요즘은 모두가 바쁘고 지쳐, 때로는 자신의 이야기조차 외면한 채 사는 것 같습니다. 다들 각자만의 이야기보따리가 넘치지 않게 잘 푸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바쁜 와중에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저는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겠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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