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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러미를 뜯는 건 내 오래된 버릇이다.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것이고. 내가 만나본 사람 열의 일곱 여덟은 다 이런 습관을 갖고 있었다. 물론 하나같이 다 그걸 버리지 못했고,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나도 손을 뜯고 싶지 않고, 섬섬옥수 같이 깨끗하고 가지런히 정돈된 손가락을 갖고 싶다. 그러나, 이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마시멜로 실험과도 같다(물론 이 실험은 낭설임이 밝혀졌다). 당장 눈 앞에 있는 지저분한 거스러미를 뜯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마음. 그 유혹과 조급함. 결국 나는 다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 무익해 보이는 습관에도 은근히 유용한 면도 있다. 거스러미를 이런 용도로 이용하는 사람들을 나는 요즘 많이 본다. 오후의 지루한 강의 시간, 교수님의 말씀이 길어질 때에 즈음하여, 사람들은 두 손을 모은다. 손가락을 오므리고, 손톱께로 다른 한 손을 가져다 댄다. 그리고는 꼼지락꼼지락. 이건 우리 사회가 허용하는 몇 안 되는 일탈이다. 시끄럽게 대화를 하거나 핸드폰을 사용한다고 지적하는 경우는 보았어도, 아직 수업시간에 손 거스러미를 뜯는다고 학생에게 한 소리 하는 교수님을 본 기억은 없으니까. 어쩌면, 과장 조금 보태서, 거스러미는 저항의 상징인지도 모른다. 당신의 이야기가 재미없다는 무언의 지적이자, 소심한 저항.
어디 수업 뿐이랴. 나는 사실 누군가와 대화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손을 뜯곤 한다. 다만, 이 경우에는 이유가 둘로 나뉜다. 전자는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당신의 이야기가 재미없고 지루할 경우. 기계적인 반응의 스위치를 올려 두고, 손은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간다. 상대가 모르게 탁자 밑에 손을 숨겨두고 하거나, 혹은 티 안 나게 조금씩 조금씩…이야기가 흥미로워지길 기다리면서.
그런가 하면, 정 반대의 상황에서도 나는 손을 뜯는다. 이 경우에서 거스러미는 긴장과 설레임의 상징이다. 어떤 감정을 유발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과 하는 대화란 설레면서도 긴장되는 일이다. 여기, 이 지점에서 무의식이 개입하는 것이다. 습관화된 손 거스러미 뜯기는 나의 긴장이 무의식 속에서 불러오는 행동이다. 의식이 상대방에게 온통 집중되는 동시에, 미처 통제하지 못한 무의식은 살금살금 내 몸을 침범한다. 상기된 얼굴로 대화에 집중하며 나는, 온종일 손을 뜯고 있다. 들고 일어난 거스러미는 가라앉을 줄을 모르고, 흘러나온 마음은 들킬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