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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 사람인가. 나란히 걷고 있는 이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두 가지의 서로 닮은, 그러나 분명 다른 대답이 불현듯 생각났다. 너의 ‘옆에’ 서 있다고 하는 말과, ‘곁에’ 서 있다고 하는 말이. 당최 무엇이 다른 건지 모르겠다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나도 일상 속에서 옆과 곁을 구분해가며 살아오진 않았다. 그저 나란히 함께 걸으면 그 뿐이었지. 당신의 자리가 내 ‘옆’인지 ‘곁’인지를 따져 가며 지내진 않았다. 그렇지만, 어떤 표현은 정확해야 한다. 나에겐 내 옆에 서 있는 이와 곁에 서 있는 이가 모두 있고, 그들은 분명 다르다. 그 개개인의 성격 뿐만 아니라, 나에게 있어 그들의 존재와 위치가 주는 의미가.
사전을 보면, ‘옆’은 사물의 오른쪽이나 왼쪽의 면, 또는 그 근처를 의미하고, ‘곁’은 어떤 대상의 옆, 공간적·심리적으로 가까운 데, 혹은 가까이에서 보살펴 주거나 도와줄 만한 사람을 뜻한다. 그러니까 옆은, 말 그대로 그저 옆이다. 물리적 위치가 나와 가까울 뿐이지, 그가 나를 각별히 여긴다거나, 내게 그가 특별한 존재가 되어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에 반해 ‘곁’이라는 단어가 품은 온기는 각별하다. 사물의 물리적 특성을 묘사하는 ‘옆’의 객관성과는 대조적으로, ‘곁’은 애초에 그 의미 속에 사람의 마음을 품고 있다. 옆을 내어주는 일과 곁을 내어주는 일은 다르고, 옆에 서 있는 것과 곁에 서 주는 것의 의미 또한 다르다. 곁을 내 주는 일은 당신에게 보내는 따듯한 환대이고, 곁에 와 주는 일은 당신이 나의 쓸모가 되고 내가 당신의 돌봄을 받게 되는 하나의 기적이다. 그 기적 속에서 ‘너’와 ‘나’는 비로소 상대방을 하나의 실체로서 마주하게 된다. 그 이전까지는, 심지어 ‘옆’에 서 있다 하더라도, 당신들은 내게 그저 내 세상의 배경이자 풍경으로서 존재하는 ‘남’에 불과할 뿐이다.
‘곁’이라는 단어의 테두리 속에 들어온 순간, 당신들의 이름은 ‘남’에서 ‘너’로 탈바꿈한다. 내 삶 속에서, 그렇게 발생하는 기적이 빈번했으면 좋겠다. 옆에서 물끄러미 관찰하는 이가 아닌, 곁에서 다정하게 말을 붙이는 이가 되어주고 싶다.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