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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진 Jan 28. 2024

연대와 믿음

9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우리 시대의 격언이 있지만, 가끔은…삶을 좀 낭비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아니, 가끔이라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하루에도 열댓 번은 일상을 소모하며 권태를 해치우고 싶은 충동이 올라온다. 그럴 때, ‘인별그램’의 소소한 게시물이나 릴스는 참 요긴하다. 요즘 친구들과 재미있는 게시물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히 알고리즘에도 그런 흥미로운 게시물들이 치고 올라온다. SNS의 전략은 참 무섭다. 원래는 ‘돋보기’ 탭을 들어가 스크롤을 내려야 찾을 수 있었던 그런 콘텐츠들이 이젠 메인 피드에 올라오는 친구들의 게시물 사이사이에 침투해 시선을 사로잡곤 한다. 예전 같으면 굳이 찾아 나서서 게시물을 탭하지 않는 이상 마주할 일이 없던 것들이, 이제는 SNS를 켤 때마다 가장 먼저 나를 반긴다. 그리고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반쯤 정신을 내놓은 채로 계속 ‘재미’를 찾아 나서게 된다. 이게 은근 두려운 일이다. ‘디지털 디톡스’라는 용어가 계속 머리에 아른거리는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여기서 내가 ‘SNS를 경계하자’,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하자’ 같은 실천성 메시지를 던지려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물론 아니다. 친구들이 보내둔, 쌓여 있는 릴스를 확인할 생각을 하면 여전히 설레니까. 그래도 나를 잡아끄는 SNS의 힘은 여전히 무섭다. 그렇지만, 그런 알고리즘도  ‘자극’이나 ‘도파민’이 아닌, 감정을 흔드는 콘텐츠를 가끔 던져 주곤 한다. 시간을 잡아먹고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이 아닌, 마음을 자극해 어떤 생각을 촉발하는 그런 게시물, 자꾸 눈에 밟혀 기어코 ‘저장’ 버튼을 누르고야 마는 그런 이야기도 이따금씩 피드에 출현한다. 얼마 전에는 ‘게’의 이야기에 콕 집혀 마음이 멍했던 기억이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 일부를 캡쳐해 만든 콘텐츠였다. 다큐멘터리는 바닷 속 게들의 생태를 촬영하기 위해 ‘로봇 게’를 투입해 관찰하는 내용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천적에 대응하는 게들의 저항 방식을 다룬 부분을 게시물은 인용했다. 원 영상에 따르면, 게들의 천적 중에서도 가오리는 한 개체가 하루에 약 50마리 정도의 게를 먹어치우는 대식가라고 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게가 단단한 등껍질을 가진 갑각류인 탓에, 가오리도 게 사냥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는 편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선택한 방식은 껍질이 연한 개체, 어린 개체들을 노리는 것. 여기서 게들의 ‘힘’이 드러난다. 껍데기가 단단한 개체들이 상대적으로 연한 개체들을 몸으로 덮어, 마치 육탄 방어를 하듯 가오리의 공격을 막아낸다. 그 숨막히는 대치 속에서, 미처 피신하지 못한 어린 게 한 마리가 카메라에 잡혔다. 그 녀석은 자신을 촬영하고 있던 커다란 로봇 게를 동족으로 인식한 것인지, 그 아래에 숨어들었다. 운이 나빠 이탈한 개체들이 가오리의 억센 이빨에 으스러져 죽어가던 그때, 로봇 게의 품에서 보호받던 어린 게는 재빨리 보다 안전한 게 무리 속으로 숨어든다. 게들은 점차 더 단단한 방어진을 형성하며 안전을 공고히 하고, 혼자 남아 버린 로봇 게가 표적이 될 운명에 처한다. 카메라가 박살나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로봇 게 또한 방어진으로 이동하는데, 여기서 게들의 반응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더 깊이 파고들 필요도 없이, 무리 위로 올라탄 로봇 게의 주위로 다른 게들이 몰려들어 마치 성채를 구축하듯 감싸안아 준 것. 마치 어린아이를 구해준 로봇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말이다.


게들의 생존 방식은 결국 단단한 연대와 꿋꿋한 믿음이다. 등갑을 맞대고 서로를 품으며 거대한 방패를 형성하고,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성벽을 잇는다. 당신이 나를 지키면, 나도 당신을 지킨다. 그 어떤 배척과 기만도 없이, 거대한 믿음으로 연대해 적과 싸워 나간다. ‘단단함’으로 표상되는 게의 물성은 딱딱한 외골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그 무엇으로도 흔들 수 없는 믿음과 의지, 굳센 연대에서 배어나오는 힘인지도 모른다. 분열과 반목, 혐오와 갈등이 만연한 사회를 마주하는 우리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어깨를 맞대는 게의 이야기에 뭉클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그저 우연은 아닐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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