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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다양한 이유로 눈물을 터뜨리지만, 보통 그 뜻은 하나로 수렴하곤 한다. '나 억울해, 내 얘기 왜 안 들어줘?' 물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제 맘대로 흘러가지 않고,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다 들어주지 않는다는 벽에 부딪혔을 때,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건 아이들이 삶을 배우는 과정이지 않나.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게 울기에, 가끔 그렇지 않은 친구들을 만나면 마냥 신기하다. 작년 한 해, 아동센터에서 멘토링 활동을 하며 만났던 친구들의 이야기다.
J는 올해 열 살이 된 조막만한 아이다. 아마 만 나이를 시행한다고 하면, 끽해야 여덟 아홉 살이 되겠지. 그러니까, 아직 귀여운 어린아이라는 말이다. J도 여느 아이들처럼 노는 거 좋아하고, 목청도 크고, 장난도 많이 친다. 실없는 농담에도 웃음을 터뜨리고, 풀떼기는 질색이다. 그런데, 친구들이 좀 심한 장난을 쳐도, 놀림을 당해도, 억울한 순간이 와도, 이 아이가 눈물을 흘리는 건 잘 보지 못했다. 이렇게나 씩씩한 J는 가족을 잃는 슬픈 영화를 보며 코를 훌쩍이고, 예전에 함께했던 대학생 선생님들을 다시 만났을 때 눈물방울을 떨궜다. 그런 기억을 반추하면서, 문득 이 아이의 눈물의 온도는 따뜻하겠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서운하고 서러워 흘리는 눈물이 아닌, 따뜻한 마음이 동하여 흘러나오는 눈물. 그리하여 J가 울음을 터뜨릴 때, 나는 천연덕스러운 미소를 짓게 된다.
K는 또래에 비해 학습이 많이 느리다. 그런 이유로 동생들보다도 진도가 느린 경우가 많고, 그런 상황을 아는 짓궂은 아이들은 자신들의 지식을 뽐내며 K를 놀리곤 했다. 그 아이들도 꼭 나쁜 의도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닐 테지만, 그럼에도 K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다. 그런데, 학습능력과 지식의 차이를 가지고 K를 놀렸던 아이들이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그건 K가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아이에겐 자신을 놀리는 동생들에게 사탕 한 알 내어 주는 아량이 있고, 고생하는 선생님들에게 보드라운 말 한 마디 건넬 줄 아는 선함이 있다. 그건 타고나는 것이지, 그저 배움의 산물은 아닐 것이다. K의 가장 강력하고도 매력적인 무기는 바로 그것이다.
J와 K는 그런 따뜻함을 가지고 있다. 인수분해를 하고 최소공배수를 구하는 건 언제든 배울 수 있고, 누구나 언젠가는 할 수 있는 일이다. 심지어 기계의 손에 맡겨질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러나 다정함은 수학 공식 외우듯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정함은 인류의 가장 큰 무기이고, 우리를 강하게 묶어 주는 연대의 원천이다. 수학 문제 풀듯 간단하게 구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고, 문제집 푸는 능력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느 책의 제목처럼...결국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거다. 그런 따뜻한 사람들 앞에 설 때면, 언제나 무방비하게 마음을 열고 싶어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