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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진 Jan 20. 2024

그 카레의 레시피

7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나는 가끔 이곳 저곳에서 우리 할머니를 본다. 어떤 드라마에는 할머니의 얼굴을 한 배우가 애잔한 가족애를 연기에 담아내고, 길을 걷다가도 비슷한 연세의 노인을 마주하면 그 뒷모습에 할머니의 그림자를 겹쳐 보곤 했다. 당신의 그림자가 지나간 땅마저 사랑했다는 그 시구처럼. 자취란 지나간 후에 좇는 것이기에 더 막연하고 슬픈 건지도 모른다. 늦은 우기에도 비는 오고, 다 지나간 후에도 눈물은 흐른다는 어느 소설가의 문장처럼.


     물론 할머니에 대한 다소 늦어버린 애정이 글의 주제인 것은 아니다. 끼니를 잘 챙기지 않는 요즘의 내가 '밥'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아마 그 소재는 유년기의 어느 한 순간에서 발견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리고 그 시절, 내게 밥을 챙겨 주던 사람은 대부분 우리 할머니였다. 이제는 다소 희미해진 기억을 반추한다고 해서, 그때 먹었던 음식과 밥상을 게워내듯 기억에서 꺼낼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단 하나 기억에 남는 음식이 있긴 하다. 카레. 일반적인 카레와는 사뭇 달랐던, 우리 할머니의 그 카레.


<카레 레시피>


감자 3, 양파 1, 당근 1/2, 돼지고기

, 카레가루, 식용유


채소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고기와 함께 볶고 적정량의 물과 카레 분말을 넣어 끓여 주면 완성!


일반적인 레시피대로라면 카레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다만, 할머니가 끓인 카레는 이보다도 훨씬 더 간단명료했다. 감자도, 양파도, 당근도 없었다. 돼지고기 또한 들어가지 않았다. 카레와 물, 그 이외엔 무엇 하나 들어가지 않았다. 물론 재료를 구하지 못할 정도로 형편이 여의치 않았다는, 뭐 그런 사연 따윈 없다. 그저 기억하는 건 카레가 정말 맑고, 묽었다는 것. 이렇게만 적어 두면 맛을 기대하기가 힘들 것만 같겠지만, 그 맛은 의외로 좋았던 것 같다.


     지금의 내가 그 카레에 대해 이야기한다면...음, 거기엔 무얼 더할 필요가 없었다고 해야 할까. 거기에는 굳이 다른 불순물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내 할머니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그 어떤 응어리진 감정도 섞이지 않은, 순도 높고 맑은 사랑을 내어 주는 이. 이 음식도, 그리고 마음도 그런 방식으로 건네주는 사람은 전에도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만나보기 힘들 테니, 나는 여지껏 그래왔던 것처럼 카레를 마주할 때는 대개 할머니를 생각하게 되겠지.


     건더기 하나 없이 밍밍한 카레를 끓여주던 할머니의 마음을 가늠해 보기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물음표로 남은 이 기억과 감정이 느낌표로 변할 날이 과연 올까. 그 때가 되면 나도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카레를 끓이고 있을까. 어쨌거나, 덩어리 하나 없는 그 맑은 것을 내어주던 당신의 그 마음을 나는 여전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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