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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언어가 너무나 무용한 순간들이 있다. 나의 말이 아무 것도 전하지 못하고, 당신에게로 가는 모든 길이 끊어져 있는 것만 같은 때가 있다. 혹은 언어가 채 담지 못하는 거대한 감정이 불쑥 고개를 들이미는 때가 있어, 이를 어쩌나 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순간도 있다. 어쩌면 그런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음악이 생겼고, 미술과 춤이 생겼을지도 모르지. 아니,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문자와 언어로도 채 담지 못하는 거대한 마음.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전해져야만 하는 그것. 그래서 노래가 왔을 것이다. 그렇기에 무용이 왔을 것이다. 우리에게로.
호흡도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표정과 호흡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따금씩 너무 커다란 감정들이 내 속에서 요동칠 때, 그래서 그걸 억누를 길이 없을 때, 내 몸은 대개 표정과 호흡으로 반응한다. 개중에는 내가 인지하고 있는 반응도 있고, 미처 몰랐다가 누가 알려 줘서 비로소 자각하게 된 무의식적 습관 같은 것도 있다. 이를 테면 내가 가끔 ‘끙…’하는 신음을 토해 내곤 한다는 건, 곁에서 나를 유심히 관찰해 준 어떤 사람이 아니었다면 결코 몰랐을 사실이다. 그게 어떤 순간에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상태에 놓여 있을 때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이란 것만은 안다. 어떤 생각에 골몰해 있거나, 특정한 행동이나 감정에 집중하고 있을 때. 아마 그럴 때 나는 ‘끙…’하는 호흡을 토해내는 것일 테다.
분명히 알고 있는 증상 같은 것도 있다. 이를테면 귀가 빨갛게 달아오르고 호흡이 가빠진다면, 그건 사랑의 증거. 불규칙적이고 빠른 들숨과 날숨, 그리고 나조차 의식하게 되는 그 크고 작위적인 숨소리.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듯 거세고 투박한 소리. 그건 감정만큼이나 숨기기 힘들다. 내가 살아 있고,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끝내 들키고야 말 이상한 가역반응. 들이쉬고 내쉬는 일을 반복하지만, 너스레를 떨 수가 없다. 호흡이 가빠진다는 건, 어떤 감정에 온 마음을 집중해야 하기에 일상적인 호흡조차 신경쓸 수가 없는 상태란 뜻이다. 그러니까 내게 호흡의 변화는 곧 사랑의 은유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언어로 생활하거나 문장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래, 호흡. 호흡이다. 숨으로 이야기하는 거다. 어쩌면 나의 말보다 이 호흡이 더 솔직하고, 또 정확할 테니까. 이 필연적 증상엔 그 어떤 거짓도 담기지 못하니까. 그러니 그 어떤 가식으로도 꾸며 내지 못할 테고. 당신은 그런 나의 숨을 들었을까. 호흡을 읽었을까. 그렇다면 거기서 건져낸 건 뭘까. 그것이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마음이라면, 당신도 호흡으로 대답을 갈음하게 될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