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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란 농담 같은 것*이라던 소설가 박상영의 문장을 기억한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 생각했다. 장난 같은 우연으로 시작해 우스갯소리처럼 흘러가다, 끝내 거짓말처럼 흩어져버리는 것. 그게 요즘 내가 생각하는 관계의 정의다. 이 농담을 맹세나 약속으로 바꿀 만한 단단한 힘이 내게는 아직 없기에, 내 말에서 사람들은 결국 농담만을 읽고 가는 건지도 모르지.
나는 관계의 심장이 멎은 후에야 비로소 구급 조치를 시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다들 알 테지. 더 이상 뛸 의지가 없는 심장 위에 가하는 압력은, 주위를 둘러싼 뼈를 으스러뜨리는 고통만을 더해 줄 뿐이다. 그리고 그 모든 조치가 끝난 후 내가 흘린 땀이 식어갈 때, 그 한기를 온전히 혼자서 감당해야만 하는 시간은 내게 지나치게 버거웠다. 거짓말처럼 멈춰버린 심장을 내팽개쳐두고 당신은 떠났고, 차가운 심장이 가리키는 관계의 죽음은 그제야 내 눈에 들어온다. 그건 농담이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이었다. 느려져 가는 심장 소리를 제때 듣지 못한 대가는 너무도 컸으니까. 그 고요한 아우성은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걸 간과했다.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데도, 나는 바보처럼 안심하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날마다 소리에 둘러싸여 살지만, 보통은 그런 것들을 음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던 류이치 사카모토의 말을 기억한다. 그는 그런 일상의 소리들에서 지속되는, 약해지지 않는, 사라지지 않는 영원성을 읽어내 그것을 자신의 음악에 차용하고 싶어 했다. 그의 시도들이 어떤 의미였는지,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그는 사라지지 않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가 쉽게 간과하지만, 그 속에 어떤 영원을 담고 있는 소리들. 그 아우성들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오롯이 담아내는 것이 그의 작업이었다. 미약하지만 분명 흐르고 있는 물의 소리, 보이진 않지만 분명 고동치고 있는 심장의 소리. 그러니까, 끝내 나는 귀에 담지 못했던, 그 음악들.
이제는 흘러가는 그 모든 소리들을 단순한 일상으로 오독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귀로 들어와 마음에 가 닿는 그 음악들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그리고 그것들을 차용해, 이제는 나의 음악을 만들어 보아야지. 여리고 약하지만, 끝내 사라지지 않는 그런 음악들을. 내 입술 끝을 울리며 나타났다가 당신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살아남을, 그런 떨림을.
<각주>
1)박상영, 『믿음에 대하여』, 문학동네, 2022
2)스티븐 쉬블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