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3차 TV토론 이준석 후보를 보며
충무로에 볼 일이 있어서 필동주민센터에서 사전투표를 했다. 사전투표날임에도 불구하고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이 길게 늘어져있었다. 투표에 이렇게 진심이었던 적이 없다. 도장을 찍으면서 가슴이 한편에 비장함과 찡한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선거 때면 주변에서 자주 들려오는 말이 있다.
"정치인들 그놈이 그 놈이지...."
그놈이 그놈이 아니다. 잘못 뽑아서 나라가 이 꼴이 된 것이다.
이준석 후보는 여성 성폭력 혐오 발언에 대해서 이렇게 사과했다.
"듣기에 불편했다면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본인은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이 아닌데 "듣는 사람이 그렇게 들렸 다면 사과한다." 그런 말이다. 결국 청자(聽者), 듣는 사람이 곡해(曲解)해서 들었다는 얘기고, 듣는 사람에게 책임전가를 한다. 그리고 그 말은 국민들이 불편할 거라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알면서도 말했다면 천인공로할 일이고 모르고 했다는 것은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얘기를 해줘도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또는 알면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둘 다 큰 문제다. 사과가 진심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것은 기자회견 남발이었다.
다시 상대후보를 저격하기 위한 포석을 깔아 놓은 듯한 사과처럼 보였다. 백번 양보해서 내가 잘못 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이준석 후보는 그런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오래전 어떤 광고 카피라이터가 쓴 책에서 이런 문구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당신을 만드는 것은 당신이 아닙니다. 당신에게 비친 그 이미지, 그 모습이 당신입니다"
투표를 하고 나오는데 나이가 일흔은 훨씬 넘으신 할아버지 두 분이 나오시면서 이런 대화를 했다.
"아니 나이도 젊은 놈이 무슨 그런 얘기를 해 갖고 그래. 그게 미친놈이지, 그게"
투표를 마치고 한옥마을을 산책하러 가는 길목에서 할아버지들의 대화에서 들은 이야기다. 이게 지금 이준석 후보에 대한 민심이다. "미친놈"이라는 표현은 내가 한 말이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전해 들은 얘기를 여기에 옮겨 적어도 이준석 후보가 이 글을 읽는 다면 감정이 상할 것이다.
하물며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전 국민이 보는 생방송에서 그런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계엄령 이후 최대 충격이었다. 그리고 의도는 더 비열하다. 진심으로 이준석 후보가 성숙하고 숙성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내 생에 이준석 후보에게 도장을 찍을 일은 없다. 대통령이 돼도 문제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직원들한테 앞으로(10년, 20년 길게 보고)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사람은 이준석인 것 같다고 얘기를 했었다. 그런데 어쩌다 이지경이 된 것일까? 누구 말대로 평생직장생활을 하루도 안 해봐서 그럴까? 공감능력이 없어서일까? 말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하는 것 같다. 말 말고 대화를 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역사를 둘러봐도 그런 왕들의 말로(末路)가 어떤지 잘 보여주고 있다. 정말 위험한 것이다. 이번에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 당선이 되더라도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되어야 하는가? 벌써부터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