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더듬어 보니 내가 어렸을 때는 치킨과 바나나가 귀했다. 어릴 땐 아버지의 월급날이 그렇게 기다려졌다. 아버지의 월급날은 치킨도 바나나도 과자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날이었다. 우리 집은 4형제였는데 냉장고에 간식이 남아있는 날이 없었다.
몇 년 전 아들의 졸업식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갈비를 먹으러 갔다. 아들이 아빠는 졸업식 때 뭐를 먹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졸업식 때 짜장면을 먹었다고 대답했다. 덧붙여 짜장면도 졸업식 때나 생일 때 한 번 먹을 수 있었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아들이 물었다.
"아빠, 아빠 어렸을 때 짜장면이 있었어?"
그러자 옆에 있던 딸이 물끄러미 아들을 바라보며 말한다.
"야, 아빠가 무슨 조선시대 사람이냐? 아빠가 짜장면도 못 먹어 봤겠냐?"
헛웃음이 나왔다. 응애 응애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커서 이런 대화도 하는 구나. 그래....그때도 짜장면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집이 있었겠지만 우리 집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월급날은 생일날처럼 기다려졌다. 지금은 세상이 풍요로워져서 치킨도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고 과자는 늘 집에 쌓여있다.
바나나는 사다 놓고 먹지 않아서 버리기도 한다. 급여날이 되도 설레임같은 건 없다. 그때 보다 모든 것이 풍족한데 왜 그때만큼 즐겁지 않을까? 내 집이 생기고, 내차가 있고, 연봉이 올라가고 맛있는 것을 먹을 수도 있는데.......
더 많은 것을 갖게 되었는데 더 즐거워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행복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닌데 .... 순박함과 순수함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순수.
순박.
단어자체가 낳설다.
이제 나와 너무 동떨어져 있는 외계의 언어같다.
얼마전 누이와 매형들과 나들이를 다녀왔다. 큰 매형이 산업재해로 거동이 불편해서 휠체를 이용해야 했다. 모처럼 나들이여서인지 매형의 기분이 좋아보인다. 멀쩡하게 직장 생활하다가 하루아침에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었다. 2년간 재활을 했지만 회복되지 못했다. 상실감이 클 텐데 표정이 항상 밝다. 잘 견뎌주어서 다행이다.
사고가 나기 일주일 전에도 가족들과 장흥계곡에 가서 매운탕과 백숙을 먹었는데 몇 일 후 매형은 하반신을 사용하지 못하는 장애를 갖게 된 것이다. 그렇게 몇 일 혹은 몇 초 사이에 삶이 바뀌고 생,사가 바뀌기도 한다.
한 참을 산책하고 온 가족이 오랜만에 분위기 좋은 숲속의 식당에 가서 식사를 했다.
대통령 선거일이 몇일 남지 않아서 온갖 파렴치한 비방을 하며 상대를 물어 뜯으려고 한다. 권력이라는 것이 추악하기도 한 것이지만 선을 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생 별거 없다.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
몇 초 사이에 생과 사가 바뀐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차카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