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5일 with 여주
날씨가 많이 풀렸다. 천천히 봄이 오려나 보다. 가족과 강원도 여행을 갈 계획이었는데 무산 됐다. 아내도 딸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다음 기회로 미뤘다. 아들의 반응도 대면대면 해서 굳이 갈 이유가 없었다. 준비를 열심히 했는데 아쉽고 맥이 빠졌다. 나도 사람인지라 다음에는 열심히 준비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종 있는 일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아쉬움은 크다.
혼자서 드라이브라도 하고 오자는 생각으로 나갔는데 차가 많이 막혀서 짜증만 더 났다. 타이밍을 못 맞춰서 귀성객 좀비 차량들의 행렬에 동참하게 됐다. 막혀도 고속도로를 타서 빠져나오지도 못했다. 아침 일찍 나갔는데 점심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돈가스 하나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다음에 가자고 하는데 그다음은 생각처럼 쉽게 오지 않는다. 경험상 다음에 하자고 해서 다음에 간 기억이 없다. 5년 전에도 경주여행을 계획했는데 무슨이유로 취소되었다. 그때도 다음에 가자고 했는데 5년이 지난 지금도 못 갔다. 앞으로도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계획을 진행하려고 하는 편이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놀러 가는 것도 때가 있다. 내가 우리 아이들과 다시 놀이동산에 가서 바이킹을 탈 일은 없다. 여행도 비슷하다. 그때는 그때에 맞는 여행이 있다. 그래야 효과가 있고 감동이 있다. 그 타이밍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봄이 와야 꽃놀이를 갈 수 있고 겨울이 돼야 설경을 볼 수 있다. 그때는 그때의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로 "연평해전"을 봤다. 기대하지 않고 봤는데 괜찮았다. 군인들의 존재감과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 "고지전"도 봤다. 감동적이었다. 연기자들의 연기가 한 몫했다. "어쩔 수가 없다"도 봤다. 박찬욱 감독 영화는 취향이 안 맞아서 그냥 그랬는데 이건 좀 괜찮았다. 극장에서는 얼마 전 개봉한 "왕과 사는 남자"를 봤다. 단종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건데 괜찮았다. 장항준이 큰 거 하나 터트릴 것 같다.
딸의 B형 독감은 거의 회복이 됐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죽이 먹고 싶다고 해서 야채죽을 샀다. 전화 주문을 하고 찾으러 가는데 매장을 잘못 찾아가서 엉뚱한 집에 가서 죽을 달라고 했다. 딸은 보약도 안 먹고 영양제도 먹지 않는다. 수험생인데 어쩌려고 저러나 모르겠다. 용돈 주면 밥사먹을거 아끼고, 교통비를 아껴서 옷을 산다. 추운 날 밤에 학원 끝나고 걸어오니 환장할 노릇이다.
아들은 귀차니즘의 극치다. 만사(萬事) 무관심이다. 오직 게임만 있을 뿐이다. 아내는 아들 학원 한 번 보내려면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야 한다며 하소연을 한다. 맛있는 음식도 관심 없다.
부모의 책임과 의무와 사랑은 언제부터 언제까지일까?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다.
부모가 죽었을 때 끝이 나는 것 같다.
구순이 다 되신 장모님은 요즘도 집사람에게 전화해서 감기조심해라. 감기 걸리면 영양제 맞아라. 그리고 우체국 택배로 굴비를 보내주신다. 구순이면 살아계신 것만 해도 대단하신 것이다. 존재자체가 업적이다.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아빠보다 같이 노는 아빠로 남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하면 기분이 좋고 행복하다. 해보고 싶었는데 못했던 일들은 아이들과 함께 했다. 그게 사랑스럽고 고맙다. 혼자였으면 못했을 것이다.
가끔 버릇없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지만 오은영 말대로 "그 꼴을 견뎌야 한다" 직장 동료 중에 아들이 서울대 합격했다. 부러운 마음이 2%는 있었지만 우리 아이들은 건강하면 된다. 그리고 본인들이 원하는 거 하면 된다. 딸의 친구 중에 중학교 때부터 베이커리 학원을 다니는 친구가 있다. 중학생이었던 그 친구에게 주제넘게 훈계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친구는 이미 중학교 1학년때 자기 인생의 방향을 확고하게 정했다. 똑똑한 친구다.
20여 년 전 나의 정자와 아내의 난자가 만나서 태어난 나의 딸, 아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살자.
바라는 것 없다.
아프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