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She

2001년 9월

by JJ

병원에서

2001년 9월

며칠째 목이 아파서 병원에 갔다. 진찰을 받으려고 대기를 하고 있는데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오른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왼팔이 없었다. 옆에 있는 할머니(A)가 그 옆에 있는 할머니(B)에게 말했다.

“저 양반 6.25 때 팔을 다쳤는데 아직도 저러고 다니지 뭐여”


가만히 듣고 있던 할아버지는 6.25 상이용사라는 자부심이 생겼는지 갑자기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말도 마. 6.25....... 지금 사람들은 전설 속에나 나오는 얘기로 들리겠지만 그때 얼마나 많은 군인이 죽었고 지금도 부상 때문에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지. 눈이 없는 사람, 귀가 없는 사람, 하반신이 없는 사람, 아예 사지가 모두 없는 사람도 있어. 그나마 나는 양반이지”


옆에서 계속 듣고 있던 할머니(A) 왈,

“에이고 그러게 말이야. 팔하나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이야.”


순간 피식 웃음이 났지만 할아버지의 사라진 한쪽 팔을 보니 튀어나오려던 웃음이 쏙 들어갔다. 팔 하나쯤이라....... 내가 멀쩡하게 살고 있다는 것은 다행이고 감사해야 할 일이다. 평화로운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는 건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에는 이순신 장군이 계셨고, 안중근 의사가 계셨고, 유관순,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 열사가 계셨다. 집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셨고.



She

2001년 11월

아침에 수영을 하다가 알게 된 아이가 있다. 예쁘고 깜찍한 아이다.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얼굴을 자주 보니 정이 든다. 그녀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그녀가 좋아졌다. 몇 개월을 지켜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난 네가 좋은데 넌 어때?”

“나도 오빠 좋지. 여기 오빠들 다 좋아”

내가 다시 물었다..

“그런 대답 말고.......”


여전히 그 아이는 말끝을 흐렸다. 그 아이는 내게 특별한 감정이 없는가 보다. 모두의 오빠는 싫다. 그 말을 들으려고 어렵게 말을 꺼낸 건 아닌데. 그 후로 나는 운동을 그만두고 한 동안 그녀를 잊고 지냈다. 6개월이 지났을까? 늦은 밤에 한통의 문자가 왔다.

“오빠 잘 지내? 그렇다고 등지고 살면 안 되잖아.”


인사치레로 안부를 물어본 것이라 생각되지만 혹시 그녀가 내게 관심이 생겼다 해도 이젠 내 감정이 변했다. 물론 나쁜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감정이라는 것이 그 순간이 지나가면 다시 처음의 감정으로 돌아가기는 힘든 것 같다. 지고지순한 소설처럼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의 관계라는 것은 분명하고 정확한 것이 좋은 것 같다. 특히 남, 녀의 관계는 더 그렇다. 연인이면 연인이고 친구면 친구다. 동생은 그 아이 말고도 수두둑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녀는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다. 과거에 사귀던 남자와 상견례까지 앞두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결혼이 취소되었다. 신랑 측에서 그 아이의 집안 배경이 탐탁지 않아서 그랬다고 한다. 세상에는 상처를 갖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상처가 많은 사람에게는 더 많은 이해와 배려와 사랑이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