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Story

by JJ

April Story

새삼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아플 때 약을 사다 주고, 더러워진 옷을 세탁해 주는 아내가 있다는 게 고맙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빠가 퇴근한 것도 모르고 게임에 몰입해 있는 아들도, 새벽까지 유튜브를 보며 깔깔 데고 웃는 딸도, 그저 고마울 때가 있다.


건강한 모습으로 내 곁에 존재해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지난 몇 달 동안 컨디션이 계속 좋지 않았다. 동네 병원을 다녔는데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대학병원에 가서 몇 가지 검진을 받았는데 다행히 나온 건 없다.


나는 디자인(편집, 패키지)과 인쇄에 관련 된 일을 하고 있다. 디자인을 해서 인쇄를 하기 전에 CTP라는 인쇄판을 만든다. 이 인쇄판을 인쇄기계에 장착을 해서 인쇄를 하는 것이다. CTP인쇄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에는 인쇄용 필름 출력해서 다시 CTP판으로 촬영을 해서 인쇄를 하는 방식이었는데 기술의 발달로 공정이 하나 줄었다. 처음 이 쪽 일을 시작할 때는 데이터를 출력실에 보내고 필름이 나올 때 항상 가슴이 두근거렸다.


시험을 치르고 나서 성적표를 받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하루에 두세 번씩 성적표를 받는 날도 있었다. 데이터 작업을 하다가 실수한 것을 필름 출력이 되었을 때 최종적으로 체크를 해서 사고를 막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이른바 필름 교정이라는 용어를 쓴다. 가끔은 출력기 자체에서 시스템 오류가 일어나 필름이 잘못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드물다.


뒷동산 산책을 하다가 벚꽃을 찍어 보았다. 좋은 핸드폰도 아닌데 이쁘게 나와서 기분이 좋다.


인간의 생로병사도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희귀, 난치병이나 유전적 영향으로 몸이 아프거나 불편한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건강관리를 소홀히 해서 몸이 병드는 경우가 많다. 술, 담배, 심지어 요즘에는 마약까지. 모두가 운동의 중요성을 알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실제 몸을 찍는 CT, MRI 촬영은 인쇄판 CTP 출력이 나올때의 긴장감과는 비교가 안된다. 엄청난 긴장감과 두려움이 생긴다. 인간이 참 미련하고 간사한 동물이다. 이상이 없으면 추후에는 운동도 하고 생활습관도 고쳐야 하는데 대체로 그렇지 못하다. 나도 마찬 가지다. 대오각성해야 한다.


CTP 출력기계에서 간혹 오류가 발생하듯이 의사들도 가끔 오진을 한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의 오진과 인쇄 출력기계에서의 에러를 같은 오류로 보면 절대 안 된다. 인쇄는 다시 찍으면 되지만 목숨은 다시가 없다. 그리고 자기 목숨은 자기가 챙겨야 한다. 의사를 맹신하면 안 된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 성적표, 직장 다닐 때는 작업물 성적표, 건강검진을 할 때는 건강 성적표. 인생은 성적표의 연속인가 보다. 그중에서도 건강은 가장 중요하다. 성적이야 떨어져도 그만이고, 일이야 잘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는데 건강은 다시가 없다.


인간의 몸은 소모품과 같은 것이다. 고치면서 사용하다가 수리가 불가능하면 폐기해야 한다. 우리 몸은 시간이 흐를수록 노쇠해지고 기능이 약해지고 발병 확률이 높아진다. 봄이 돌아오듯 인간도 회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다시 젊어질 수 없다.






우리의 인생과 결혼은, 전쟁터에서 떨어지는 포탄을 피해 가며 적진을 향해 함께 돌격하는 병사와도 같은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 같다. 부부간에 전우애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닌 것 같다. 여전히 우리 부부도 티격태격하고, 삐딱하게 말을 해서 빈정이 상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


이것이 연애와 결혼, 판타지와 리얼의 가장 큰 차이다. 아플 때도 안 아플 때도 항상 내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장땡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 그 외 것들은 일루젼이다. 일루젼은 극장이나 넷플릭스에서 충분히 감상하고 삶은 항상 리얼이라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삶은 라이브다. 연극도 아니고 녹화방송도 아니고 다시보기도 안된다. 낭만과 판타지는 방년 18세나 약관 20세에 끝내야 한다.


평생을 잉꼬부부로 사는 사람도 있지만 내게는 어려운 숙제 같은 얘기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부부들인가 보다.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일상의 행복을 자주 망각한다. 당연한 일상 같지만 세상 어떤 누구도 나에게 줄 수 없는 감정들을 아내와 아이들은 주고 있다. 반복되다 보니 무뎌져서 행복한 것을 행복하다고 못 느끼는 것이 문제다. 물론 매일, 매 순간 고마운 것은 아니다. 미울 때도 많다.


꽃들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개나리와 벚꽃이 봄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진짜 봄은 지금부터다. 뛸 준비를 해야 한다. 드라마 빨간 풍선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어떻게든 살면 살아진다"


우리는 다시 살아야 하고 다시 달려야 한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혹은 병상에서, 선상에서, 사선에서, 산속에서, 바다에서...... 우리는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 자연과 날씨가 주는 영원한 진리.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린 날이 있고 비 오는 날 있으면 해 뜨는 날이 온다. 이 단순 찬란한 진리를 나는 믿는다. 명료하고 진실된 내 삶의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