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꽃이 좋아진다는 말이 있던데 나도 요즘엔 꽃이 좋다. 꽃을 싫어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꽃이 딱히 예쁘다는 감정을 느끼면서 산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때 인가부터 꽃이 좋아지기 시작하더니 꽃놀이를 가는 것이 즐겁다. 사람이 이렇게 바뀌기도 하는 가 보다. 요즘은 꽃 구경이 낙이고 힐링이다.
그렇다고 꽃에 대한 기억들이 좋은 것도 아니다. 젊은 시절에 첫사랑에게 처음 꽃을 선물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다음번 만나는 날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다. 그 녀가 헤어지려고 준비를 하던 타이밍에 나는 그 녀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한 번은 내가 싫어하는 여성에게 꽃을 선물 받았다. 버리기 아까워서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 신혼 때는 결혼기념일에 아내에게 선물을 하려고 꽃을 사 왔는데 예상 밖으로 아내의 반응히 시원치 않았다. 나 같은 샌님스타일이 꽃을 사서 지하철을 탄다는 것은 큰 용기고 결심이었는데 노력이 허사가 돼버렸다.
참 좋은 계절이다. 얼마 전까지 연두색이었던 숲은 이제 초록색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 신기하다. 자연이, 계절이 이렇게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다.
오래전부터 엄숙주의, 패배주의, 염세주의, 허무주의에 빠져 즐겁고 평온한 시간들을 누리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쓸데없이 그런 것에 시간을 너무 허비했다. 나름 성실하게 살아서 인정은 받았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다. 내세울 만한 것도 없다.
딱히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불만족스럽지도 않은 이 어정쩡한 삶이 맞는 것인가? 고민도 한다. 행복한 것 같기도 한데 만족스럽지는 않은 것 같은 이 느낌적 느낌. 후회하지 않을 삶을 위해 더 노력할 것이 있는 것 같은데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아버지가 꿈이 없어서 아이들도 꿈이 없는 것은 아닌가? 자책감이 들기도 한다. 아버지는 꿈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삶을 선택했지만 아이들은 꿈이 있었으면 좋겠다. 라일락, 아카시아 꽃도 지고 본격적으로 장미가 피기 시작했다. 꽃의 향연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