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맛디 아니할세

by JJ

서로 사맛디 아니할세

2011년 5월

금쪽같은 휴일이다. 아침부터 딸과 놀아주기가 시작된다. 딸은 어제 교회에서 받은 조그마한 액세서리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거리고 있다. 지난번 샤프심을 통째로 먹은 사건도 있어서 더 예민해져 있다. 특히나 아이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물건들은 부모들이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사고가 나는 시간은 1초도 걸리지 않는다. 이제 제법 말귀도 알아듣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기에 그냥 놀게 놔두었다.


그러기를 십여 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딸이 물을 마시면서 “아빠 삼 겼어요.”라고 말을 했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삼켰어? 아빠가 먹지 말라고 했잖아. 먹으면 배 또 아프고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잖아”

딸은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이 다시 말했다.


“아빠, 먹었어~ 먹었어”를 연발했다.

화가 나서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여 혼을 냈다.


“아빠가 먹지 말라고 했지? 먹으면 배 아프고 병원 가야 한다고 했지. 왜 아빠 말 안 들어. 혼나 볼래? 왜 말 안 듣냐고!”


한참을 혼내고 병원을 가보려고 허둥대고 있는데 방안 쪽 구석에서 딸이 조금 전 입에서 오물오물거리던 조그마한 액세서리가 나왔다. 순간 ‘아, 삼킨 게 아닌가? 그런데 이건 뭐지? 다른 데서 떨어져 나온 것일까?’여러 가지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액세서리 조각이 여러 군데 있어서 정확하게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마음은 계속 불안했다.


오후엔 장을 보러 마트에 가야 한다. 아내는 오늘도 늦장이다. 이제 별로 개의치 않는다. 스트레스받는 사람만 손해다. 서둘러 나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내게 껌을 주며 씹으며 건넨다. 그것을 본 딸이 껌을 달라고 떼를 쓴다. 아직 껌을 줄 때는 아닌 것 같다고 삼키면 좋을 것 없다고 주지 말자고 했으나 그러나 아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딸에게 껌을 건넨다.


껌쯤이야 문제가 되겠느냐는 것이 아내의 생각이고, 아이가 껌을 삼켜서 좋을 것이 없으니 주지 말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껌뿐만이 아니라 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그렇지 않은가? 위험 요소는 애초에 없애는 게 맞다. 이미 떼를 쓰기 시작한 딸은 끝내 껌을 받아서 씹기 시작했다. 찜찜한 기분으로 마트에 갔다. 뻥튀기를 하나 샀는데, 딸이 먹겠다고 마구 조른다. 나는 딸에게 껌을 뱉으라고 했다.


그리고 뻥튀기를 먹자고 했다. 그러자 딸은

“아빠, 껌 삼켰어요." 하며 입을 쩍 하며 벌려 보여준다.


‘아뿔싸 삼켰구나. 아침에 액세서리에 이어 오후에는 껌까지....’

먹으라는 밥은 안 먹고 왜 이런 것들 먹어 대는지 속이 뒤집어질 지경이다.






더 기분이 언짢았던 건 아내에게 주지 말라고 여러 번 얘기했지만 아내는 너무 대수롭게 않게 생각하며 껌을 준 것이다. 그리고 기어이 껌을 삼킨 것이다. 이래저래 장을 볼 기분이 아니어서 집에 빨리 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딸은 이제 36개월도 안된 네 살 된 아이다. 뭐가 옳고 그르고, 하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지난번에 먹다가 잘 뱉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껌을 잘 뱉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껌을 안주는 것이 맞다고 본다. 껌이었으니 망정이지(껌도 위험할 수 있다) 다른 물질이 들어가서 위험한 상황이 되었다면 어떻게 할 뻔했는가? 0.1%의 위험이라도 있다면 원인을 제공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기분도 그렇고 해서 대충 장을 보고 집으로 오려고 하는데 갑자기 딸이 차도로 뛰어갔다.


맞은편에 있는 아내에게 손짓을 하며 딸을 잡으라는 모션을 취했지만 아내는 본 건지 못 본 건지 가만히 서있다. 놀라서 카트를 팽개치고 뛰어가서 차도로 달려가는 딸을 붙잡았다.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별일 아닐 수도 있는 작은 일들이 아침부터 쌓여 오후에는 기분이 아주 엉망이 되어버렸다. 집에 돌아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누웠다. 피곤하고 쉬고 싶다. 10분쯤 누워 있었을까? 딸의 떼가 시작된다.


딸의 떼는 온 동네에 정평이 났다. 한번 울기 시작하면 얼마나 울음소리가 크던지 이 집 저 집에서 창문을 열며 우리 집을 쳐다볼 정도다. 한 번은 아동학대를 의심받은 적도 있다. 아내는 무엇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 우는 딸을 보고도 달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내가 가서 달랬다. 딸의 강력한 떼는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기본이 30분이고, 상황에 따라 1시간 이상이다. 우리가 훈육을 잘못한 것일까?


아이들은 모두가 다르고 기질적인 영향이 있다고 하지만 우리 딸은 아무리 생각해도 떼가 너무 심하다. 오늘도 역시 30분 이상을 울고 간신히 달래 목욕을 시켜주려고 욕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렇게 떼를 쓰며 울어도 조금만 지나면 안쓰럽다. 더 잘해주고 예뻐해 주고 싶은데 쉽지 않다. 5분쯤 씻겼을까? 딸의 기분을 달래주려고 노래를 불러주며 머리를 감기고 있었는데, 아뿔싸 눈을 감고 잠이 들어 버렸다. 깨워도 소용없다.


워낙 심하게 울어서 피곤해 지쳐 잠이 든 것 같다. 하는 수 없이 잠든 체로 비누를 칠해서 몸을 씻겼다. 씻다 보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딸을 안고 물을 뿌려서 헹궈주고 대충 물기를 닦아서 재웠다. 아이 키우다 보면 별일이 다 있다고 하더니 목욕하다 자는 경우는 처음이다. 자는 모습을 보니 너무 귀엽고 예쁘다.


그렇게 심하게 떼를 쓰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딸이 자면 우리에겐 평화의 시간이 온다. 아내는 뭐가 심통이 났는지 방에 들어가서 한 참을 나오지 않는다. 요즘은 딸의 떼가 문제가 아니라, 아내의 떼가 더 문제인 것 같다. 오늘은 아내가 정말 밉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아내의 심리상태는 둘 중에 하나였을 것 같다.

1. 극도의 육아 스트레스로 만사가 귀찮고 힘든 절체절명의 위기의 상태.

2. 남편이 밉거나 싫었던 심리 상태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니 후자일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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