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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제이 Dec 03. 2022

어쩌다 농부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인성교육 차원으로 주말 농장을 시작했는데 벌써 8년이 되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반세기를 서울에서만 살았던 나에게 농장은 신세계였다. 씨를 뿌리고 잎이 자라고 열매가 나오는 과정이 재밌고 신기했다. 그리고 그것을 재배해서 식탁에까지 올라오는 모습을 보니 남다른 즐거움이 있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주말 농장 8년을 하니 열심히 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많다. 


친환경이라 농약을 주는 번거로움도 없고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행사라 작물을 키우는 방법도 알려준다. 봄에는 상추, 아욱, 토마토를 심었고 가을에는 배추와 무를 심었다. 대체로 관리가 쉽고 손이 덜 가는 작물들이다. 아무리 쉽다고 해도 작물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과 애정은 있어야  한다.


가장 키우기 쉽다는 상추도 적당한 시기에 한 번씩 따주어야 한다. 시기를 놓치면 나중에 배추처럼 자라서 먹을 수 없다. 시간이 더 지나면 나무처럼 자란다. 상추가 나무처럼 크게 자랄 수도 있다는 것을 농장을 하면서 처음 알았다. 바쁜 일정이 있어서 두 달 동안 농장에 못 간 적이 있었는데 상추가 어른 키만큼 자라 있었다. 잡초도 마찬가지다. 고온에 장마까지 겹치면 하루가 멀다 하고 무성하게 자라서 숲을 만든다. 


농장은 아이들과의 추억도 있지만 일가친척과의 추억도 많다. 장모님도 오셔서 잡초도 뽑으시고 아욱을 뜯어다가 된장국을 끓여 드셨는데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다. 아이들은 상추를 뜯어서 고기를 싸 먹는 것을 좋아한다. 누이와 매형도 오셔서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며 평화로운 일상을 즐긴다. 


무엇보다 이곳은 형과의 마지막 추억이 있는 곳이다. 형이 하늘나라로 가기 전에 감자를 캐고 커피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했던 곳이다. 평상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가족들의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아이들 어렸을 때 수돗가에서 물장난을 하던 모습도 생각이 나고 감자 모종을 하나씩 정성 들여서 심던 형의 모습도 생각난다. 행복한 순간은 너무 짧은 것 같다. 이제 모두 추억 속의 일이 되었다.


농장의 가을, 배추와 무가 잘 자라고 있다


작물을 잘 자라게 하는 방법도 자식을 키우는 방법과 비슷하다. 꾸준하게 관심을 갖고 보살피고 정성을 들여야 한다. 적당히 물을 주고 비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게 지지대를 세워주어야 하고 다른 식물로 양분이 빠져나가지 않게 솎아 줘야 하고 주위에 잡초도 뽑아 주어야 한다. 때론 약도 처야 한다. 그래서 자식 농사라는 말이 나온 모양이다.


지금도 장화를 신고 삽질을 하는 내 모습이 익숙치는 않다. 그래도 밭에 가면 마음이 편안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어느새 나의 힐링 장소가 되었다. 2년간의 코로나 시대에도 농장에 와서 마음껏 자연을 즐겼다. 집사람이랑 부부 싸움을 하고 나서 피신하는 장소로 여기만큼 좋은 장소가 없다.  


파란 하늘을 보며 평상에 앉아서 먹는 커피는, 고가의 스타벅스 커피와 견줄 바가 아니다. 아이들 때문에 시작한 주말농장이 나만의 아지트가 되었다. 가족의 즐거움도 필요하지만 나의 즐거움도 필요하다. 너무도 소박한 나의 즐거움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이다" 굳이 로켓트를 타고 달나라에 가거나 골프채를 들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내 몸에는 한량 DNA가 있는 것 같다. 말 타고 활쏘러 다니는 것보다는 정자에서 일잔 찌끄리며 풍악을 즐기는 것이 체질에 맞다. 


농장의 사계절을 구경하는 것도 큰 재미다. 1년에 4가지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생각해 보면 감사할 일 투성이다. 일상에서 판타지를 좇거나 무리수를 던지지 말자. 가만히 있는 즐거움을 아는 것이 진정한 고수다. 그것을 전문 용어로 도인(道人)이라고 한다. 학(學)은 더하는 것이고, 도(道)는 덜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욕심을 내지 말라는 뜻이다. 너무 뭔가를 하려고 용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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