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 육아란 무엇인가?
2011년 10월
눈을 뜨자마자 고민이 시작됐다.
'딸에게 무엇을 먹여야 하나?'
아내가 냉장고에 생선이 있다고 했는데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찾을 수가 없다.
딸이 손톱을 깎아 달라고 한다. 손톱이 길어서 아픈 모양이다. 손톱깎이도 역시 보이지 않는다.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내는 지금 병원에 입원 중이다.
밥을 먹이기 위해 햄과 야채를 썰어서 프라이팬에 볶았다.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다. 국이 없어서 계란찜을 급하게 했다. 맛이 없는지 딸은 계란찜을 먹지 않는다. 밥만 김에 싸서 몇 숟가락 먹는다. 감기 때문에 약을 먹여야 한다. 다행히 약은 잘 먹는다. 바나나를 달라고 해서 바나나를 까서 주었는데 잠시 아내와 통화를 하던 틈을 타 방바닥에 똥을 쌌다.
기저귀를 갈아주자마자 이번에는 동화책을 가져와서 내민다. 이제 나도 밥 좀 먹고 싶다.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부랴부랴 밥을 먹었다. 며칠간 엄마의 손이 닿지 않으니 딸의 몰골이 말이 아니다. 거지가 따로 없다. 다른 아이들처럼 대소변을 가릴 줄 아는 효심을 보여 줄 수는 없는지.
무심한 딸은 오늘도 아빠를 연신 부르며 요구사항이 너무 많다. 그래도 병원에 있는 엄마를 찾지 않고 아빠를 찾으니 다행이다. 역할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다. 누구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기보다 자신의 역할들에 충실했을 때 빛이 나는 것 같다. 전부 로켓만 만들겠다고 하면 아이는 누가 키우는가?
내가 하는 일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에 대한 소명감을 갖아야 한다. 로켓을 만드는 것이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은 큰 착각이다. 육아와 가사를 음식에 비유하면 "쌀"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쌀.
가정이 잘 돼야 나라도 잘된다. 집안은 엉망인데 밖에서 큰 일을 했다는 사람은 들어본 적이 없다. 모든 일의 시작은 가정에서부터다. 아내는 집안일을 쉽게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내가 직접 해보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단순히 체력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 외에도 처리해야 할 리스트들이 끝이 없다.
분명 육아와 가사는 무척 힘든 일이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은 없다. 힘들어도 누가 남보다 잘 소화해 낼 수 있는가, 지혜롭게 풀어가는가의 차이인 듯싶다. 계란찜을 하다가 가스레인지 바닥으로 국물이 모두 흘러내린 것을 행주로 닦아내며 문득 집안일의 덧없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힘은 힘대로 들고 표시는 나지 않는다는 집안일. 제대로 돼있으면 당연한 것이고 문제가 생기면 잘못한 것? 그게 아니다. 제대로 되어있다는 것은 잘해서 제대로 되어있는 것이고, 문제가 생기는 것은 잘못해서가 아니라 잘해도 언제든 문제는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빠른 속도로 설거지를 끝내고 방을 걸레로 문지르고 나니 점심 먹을 시간이다. 점심은 짜장을 먹여 보려고 한다. 생선은 결국 찾지 못해서 구워주지 못했다. 계란찜은 한 숟가락 먹더니 더 이상 먹지 않는다. 작전을 바꿔서 평소에 잘 먹는다는 짜장면을 먹여보기로 했다. 아이에게 권장식품은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먹여보는 수밖에 없다. 이것도 안 먹으면 안 되는데.......
손톱깎기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성인용으로 잘라주려고 했더니 굳이 자기 것으로 잘라 달라며 떼를 쓴다. 하는 수없이 다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아내는 잘 찾아보라고 한다. 못 찾아서 전화했더니 다시 잘 찾아보라는 허무한 대답을 들었다. 역시 짜장면도 두 번 받아먹더니 딴짓을 한다. 이제 요구르트를 달라고 한다. 요구르트를 주었다. 잠시 후 냉장고에서 메추리알을 보더니 메추리알이 먹고 싶다고 한다.
신속하게 메추리알을 삶았다. 메추리알을 깔 시간도 틈도 주지 않고 갑자기 베란다에 있던 고구마를 쪄달라고 한다. 다시 냄비에 물을 넣고 고구마를 찌기 시작했다. 고구마는 어떻게 찌는 것일까? 대충 물을 붓고 고구마를 넣고 찌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했다. 고구마가 물렁물렁한 인절미 떡처럼 변해 버렸다. 여하튼 고구마를 열심히 까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딸을 불렀다.
“oo야 고구마 먹자”
아! 딸이 자고 있다. 요구르트를 방바닥에 반쯤 흘린 체 요구르트병을 쥐고 잠이 들었다. 천연덕스럽게 아주 평온한 모습으로 자고 있다. 갑자기 허탈해졌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건만 계란찜과 짜장에 이어 메추리알과 그리고 고구마까지 모두 내가 먹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생긴 새로운 습관은 음식을 남기는 일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남은 음식은 모두 내가 먹는다. 아내는 자기 자식이라도 아이가 남긴 음식을 먹지 않는다. 그래서 딸인 남긴 음식은 내가 다 먹는다. 사실 나도 총각 때는 누가 남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남은 음식은 어떻게 해서라도 버리지 않고 다 먹는다. 처음에는 딸이 남긴 음식은 바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아내가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딸이 먹지 않는다고 다 버리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 준비한 시간, 재료, 그 정성들이 단지 아이가 밥숟가락을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허망하게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내가 숟가락을 들었다.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다 먹으리’
그렇게 해서 먹기 시작한 것이 습관이 되어 이제 외부에서 식사를 해도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 오늘 나의 점심은 역시 딸이 먹다 남은 짜장면과 깻잎 한쪽과 멸치 한 접시였다. 그리고 딸이 먹다 남긴 요구르트와 고구마가 후식이다. 점심 설거지를 하고 난 후 미끄럼틀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딸이 잠에서 깨기 전에 조립을 끝내야 한다.
미끄럼틀을 조립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이다. 딸이 깨기 전에 샤워를 해야 한다. 천금 같은 자유시간이다. 서둘러 욕실로 뛰어가는 내 모습이 불쌍하다. 이렇게 샤워할 시간도 없이 하루가 흘러가니 가끔 아내가 투정하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내 시간은 하나도 없어.’
그럴 만도 하다. 씻을 시간도 없을 정도니 오죽하겠는가? 커피는 사치다. 저녁은 무엇을 해서 먹여야 할까? 나의 레퍼토리는 이미 동이 났다. 계란프라이를 해줘 볼까? 아니면 죽이라도 끊여서 먹여 볼까? 다시 고민이 시작된다. 이것저것 잘 좀 먹어주면 좋으련만.......
저녁을 먹고 나면 책을 몇 권 읽어주고 딸이 가장 좋아하는 블록놀이를 해줘야 한다. 분명히 블록놀이를 하자고 졸라 댈 것이다. 그리고 목마를 태워주고, 말을 타기 놀이를 한 후에 재우면 될 것 같다. 자식 앞에 피에로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그러나 나쁘지 않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것을,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행동을 하는 내 모습을 볼 때 스스로 깜짝깜짝 놀란다.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을 알 것 같다. 어머니는 강할 수밖에 없다. 원래 강한 것이 아니라 강하게 만들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