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아내는 가끔 결혼은 여자에게 손해라는 말을 한다. 남자는 밖에서 자유롭게 사람도 만나며 자기 발전도 할 수 있는 반면, 여자는 집에서 가사만 하다 보면 발전도 없고 삶도 단조로워져 바보가 되는 기분이라고 한다. 아내는 전업주부다. 충분히 공감한다. 가끔 아내가 집을 비우는 날엔 내가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게 되는데 정말이지 너무 고단하고 엄청난 스트레스가 쌓인다.
말도 못 하고, 뜻도 이해하지 못하는 영, 유아를 돌본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많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집안일은 또 얼마나 고된가? 고작 하루만 해도 힘든데 몇 년을 그렇게 반복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인내가 필요 한지 충분히 이해한다. 늘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더군다나 외벌이인 우리 집은 아내가 느끼는 가사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가 엄청 날 것이다.
하지만 결혼한 남자의 인생이라고 해서 쉽지만은 않다. 비굴하고 치사한 날들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비굴함으로 살아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치사한 날들도 허다하다. 맞벌이를 하는 집이라도 여성보다는 남성이 상대적으로 책임감에 대한 압박이 심하다. 지금도 남성들은 낮에 나가서 돌아다니면 "가장이 백수네?"라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성들이 집에 있으면 왜 집에 있느냐고 묻지 않는데 비해 남성이 집에 있으면 이상한 눈초리로 본다.
치사해도 묵묵히 사는 날들이 더 많다. 회사의 일을 시시콜콜 아내에게 말할 수 없다. 말을 한다고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이 편하지도 않다. 오히려 아내에게 부담만 더 줄 뿐이다. 아무에게도 좋지 않은 말을 굳이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집에 와서 오늘 치사하고 비굴한 하루였다고 아내와 자식에게 말하는 가장은 아마 없을 것 같다. 중요한 결정이나 고민을 함께 의논할 수는 있지만 시시콜콜한 바깥일을 다 말할 수는 없다.
지금은 과거의 나의 아버지 세대처럼 가부장적인 아빠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가정적이고 집안일에도 충실하다. 남편들도 아내를 위해 열심히 가사를 돕는다. 마음 편히 친구 한번 만나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그만큼 지금 아빠들은 밖에서도 안에서도 희생하고 노력한다. 가사, 육아는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아무도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아이가 혼자서 클 수는 없다. 아마 인류는 멸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엄마들은 위대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빠가 키워도 되겠지만 역할이라는 것이 있다. 엄마의 역할, 아빠의 역할.
온 세상의 아이들이 아빠의 손에서 자라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안될 거야 없지만 왠지 엄마의 손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부자연스러울 것 같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역할이라는 건 존재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