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

버티는 자가 이긴다.

by JJ

8년 전 일이다. 15년간 근무했던 회사를 퇴사하고 이직을 했다. 그동안 커리어도 쌓이고 일에 대한 자부심도 생겼으나 새로운 직장에서는 별 소용이 없었다. 녀석은 30대 중반의 젊은 친구였다. 디자인과 출판, 인쇄분야는 처음이라고 했다. 업계에서는 초보였지만 업무로는 리더였기 때문에 녀석의 의견을 존중했다. 인정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현실 때문에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조직이란 그런 것이다. 때론 옳은 방법이 아니어도 그 순간만큼은 따라야 하는 때가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나의 방법으로 바뀔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기다리는 시간은 오롯이 나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커리어를 인정하지 않고 고집을 피우는 녀석을 보면 밉기도 했고 한편으론 안타깝고 불안했지만 기다려야 했다. 심지어 나에게 훈계를 할 때도 있었으니 분노가 솟구쳤지만 참아야 했다.


육아를 해보니 어린아이들은 어른의 말을 새겨듣지 않는다. 물에 빠져봐야 깊이를 알고 뜨거운 물에 손을 넣어 봐야 뜨겁다는 것을 안다. 직접 경험하고 몸소 느껴봐야 자기의 노하우가 되기도 하지만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애써 경험할 필요는 없다. 리스크를 줄이려면 경험자의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서점에 갔는데 이런 제목의 책도 있었다. 역시 요즘 글의 대세는 어그로다



1-2년은 녀석을 상대하는 것이 버거웠다. 논쟁과 언쟁도 종종 있었다. 대체로 이런 녀석은 싸가지도 없다. 처음에는 회사도 인간도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녀석 때문에 퇴사를 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버티며 기다리기로 했다. 퇴사를 하는 순간 그의 방식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먹구구로 일하는 녀석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조언도 듣지 않는다. 망나니 같은 녀석과 언제까지 함께 해야 하나? 고민도 깊었다. 모르는 놈들이 고집도 세고 근본도 없다. 주거래 업체를 담담하는 책임자이니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녀석이 단시간 변하지는 않겠지만 나의 방식대로 바뀔 수밖에 없다는 믿음이 있었다. 교만도 오만도 아니다. 혼돈의 시간이 지나면 질서가 잡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천 번을 참고, 천 번을 지켜보고, 천 번을 기다리고, 천 번을 속 태웠다. 내가 15년간 경험했던 것들을 녀석도 깨닫으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8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녀석은 회사에서 누구보다도 내게 잘한다. 일도 혼자서 척척 해낸다. 문제가 발생하거나 사고가 터져도 알아서 신속하게 수습한다. 내 손이 가지 않게 완벽하게 처리한다. 8년이라는 시간을 속이 문드러지도록 참고 버텨온 시간에 대한 일말의 보상을 받는 느낌이다.


여전히 근본(根本)이 없긴 하지만 많이 좋아졌다. 근본 있는 녀석이 되려면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할지 모르겠다. 근본은 이라는 것은 단 시간에 바뀌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학습이나 교육을 통해서 바뀌기도 하지만 뿌리나 내력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가르치 직장에서는 일을 가르치고 가정에서는 인품을 가르쳐야 한다. 녀석도 세월이 흐르다 보니 아주 조금씩 근본이 바뀌는 것 같기도 하다. 일도 잘하는 데 인품까지 좋으면 존경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미울 때도 있지만 필요한 존재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일견 고마운 마음도 있다. 녀석의 앞날에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