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쯤.
아들이 5-6살 때로 기억한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아내의 표정이 좋지 않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들 때문이었다.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우리 집에는 없는 고가의 장난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신기한 장난감을 본 아들은 그 장난감을 갖고 놀고 싶었나보다.
아들이 장난감을 만져보려고 하자 아들 친구가 만지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화가 난 아들은 친구와 놀지도 않고 그 집을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장난감을 사달라고 엄마한테 한 참 떼를 쓰며 울었다고 한다. 그 당시 우리 집 경제 사정은 많이 좋지 않았다. 나는 이직을 하던 중이었고 몇 개월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힘든시기였다.
구직을 하면서 아르바이트했지만 4인 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그날 밤 나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아들이 좋아하는 장난감도 하나 사주지 못하는 아빠, 나는 그런 아빠였다. 대출이라도 받아서라도 장난감을 사주고 싶었다. 그때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자괴감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우리는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이유들이 있다. 만약 지금 나에게 현금 100억이 생긴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갈 것인가? 차를 바꿀 것인가? 호화로운 세계여행을 다녀올 것인가?
내가 20대 30대에 100억이 생겼다면 그랬을 수도 있겠다. 지금은 그러고싶지 않다. 먼저 아들, 딸에게 집을 한 채씩 사주고 싶다. 그리고 아내에게 나머지 돈을 줄 것이다. 1억 정도는 내가 여행해보고 싶었던 곳들을 여행하는 것으로 쓰고 싶다. 그것으로 100억을 충분히 가치 있게 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 기부도 조금 할 것이다.
그래도 돈이 남는다면 20대 첫사랑에게 먹고 싶은 거 사 먹으라고 계좌이체를 해주고 싶다. 다시 만날 일은 없다.
지금 당장 100억이 생기더라도 내 생활에는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지금의 100억보다 10년 전의 10만 원이 내게는 훨씬 더 절박하고 절실했다. 돈의 가치와 쓰임새는 그런 것이다.
얼마 전 우연히 아들의 핸드폰을 보게 되었다. 아들의 카카오톡 프로필에 나는 이렇게 저장이 되어 있었다.
"멋찐아빠"
갖고 싶은 장난감도 하나 못사주는
박봉의 샐러리맨 아빠가 싫지는 않은가 보다.
"땡큐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