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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피아니스트 Jan 22. 2022

피아니스트의 꿈

코로나 19, 귀국을 결심하다.

유학생활이 시작되고 방학이면 한국을 오가는 생활을 10년간 반복해 왔다.


유학 초기에는 방학마다 한국에 오는 것이 당연시 여겨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연주나 시험일정으로 바빠지면서 1 이상 한국에 오지 못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졌다.


본래 타고나기를 한식을 좋아하고 유난히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이라 그랬는지 나에게는 늘 '집'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유럽에서 한국을 오가는 장시간의 비행기에 오를 때면  설렘과 아쉬움, 걱정과 

염려, 그리움,  그대로 오만가지 생각과 감정이 나를 사로잡았고 나는 직장인들이 

'사표' 가슴에 품고 다니듯 '귀국'  

마음 한편에 품고 다녔던  같다.


하지만 적응하기 위해서,  잘하기 위해서 노력하며 그곳에서의 삶을 계속 엮어나가다 보니 1, 2년이 지나고 어느덧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가족과 집에 대한 그리움은 항상 나의 마음속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귀국에 

대한 부담감이나 두려움이 커져갔고 

어느 순간부터는 유학을 처음 결정했던 

순간만큼이나 귀국에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상 귀국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정말 갑작스러운 귀국을 하게 

되었다.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시기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유로.


귀국하기 불과 한 달 전, 아니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귀국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중국에서 코로나 19 발생하고 뉴스와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통해서 소식을 계속 전해 듣기는 했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은 여전히 코로나로부터 아직 안전한 곳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를 통해 유럽까지 

코로나19 급속도로 퍼지면서 유럽에 있던 내가 코로나를 체감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게에서는 재난 영화에서나 볼법한 사재기가 시작되었고 줄줄이 공항 폐쇄와 비행기 결항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당시 기숙사에 살고 있었는데 

 나라의 국경까지 봉쇄되기 시작하자

룸메이트와 기숙사의 친구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줄줄이 짐을 챙겨 떠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살면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종류의 두려움을 느꼈다.

철저하게 이방인이자 정말로 혼자가  기분.


급박한 상황 속에서 며칠 더 상황을 지켜보자고 하던 중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로부터 걸려온 전화.

"상황이 많이 좋지 않다." " 이번 주 안으로 무조건 최대한 빨리 들어와라."


그로부터 귀국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3 남짓. 그렇게 해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방향으로, 전혀 불가능할  같았던 귀국 준비가 시작되었다.

결항으로 혹여나 영영 그곳에 발이 묶일까 나를 염려하신 아빠의 재촉이 보태진 덕분이었다.


지금은 여담처럼 말할  있는 여유가 생겼지만 두려운 마음에   마스크를 하고 식사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던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여전히 아찔하고 그저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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