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튀르키예 중학교에 따라가다_1

멋진 영어선생님, 펜팔친구 굴샤

by 가니Gani

이른 아침, 평소에는 친구들의 출근 소리를 들으며

이불속에 웅크리고 있어야 할 백수 한국인이

이번에는 친구들과 함께 분주히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Merhaba~ memnum oldum, benim adim..."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제 이름은..)

전날 다려놨던 길고 단정한 체크 원피스를 꺼내 입으며

준비했던 자기소개를 중얼중얼 연습한다.

가슴이 괜히 두근거리고 살살 긴장이 되는 게

생전 경험해 본 적 없는 전학생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굴샤와 그녀의 사촌들도 덩달아 분주하다.

그녀들은 옷장에서 여러 재킷들을 꺼내 와

이게 잘 어울리네, 저게 잘 어울리네 하며

열띤 토론을 벌인다.

평소보다 세배는 더 정신없는 아침,

그날은 내가 굴샤네 학교에 따라가는 특별한 날이었다.


내 펜팔친구 굴샤는 중학교 영어 선생님이다.

예쁜 외모에 차분한 목소리를 가진 굴샤는

마음이 여리고 착하지만 은근히 단호한 모습이 있어서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정말 잘 어울리는 친구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지만

학생들을 위해 모든 수업을 영어로 하는 굴샤는

누구보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위하고

잘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는 참된 스승이다.


한 번은 굴샤가 나에게 자신의 제자와 함께 온라인 수업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학교에 당분간 나올 수 없었는데

그 친구가 영어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외국인인 나에게 직접 질문하고 대화를 할 기회를 주고 싶었단다.


그때, 서툰 영어로 이것저것 질문을 하는 학생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선생님이 교육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면

학생이 이렇게 신나게 공부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사실 그녀는 선생님이 안 될 뻔했었다.

대학생 시절 굴샤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진로 고민을 하던 굴샤는

뒤늦게 선생님이 되기로 결심했고

남들보다 반년정도 늦게 임용 시험 준비를 했다.

준비기간을 이렇게 짧게 가지고 공부하는 사람은 없다며

엄청나게 걱정하던 그때의 굴샤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임용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그녀의 사촌인 세나의 말에 따르면,

굴샤는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자기 전 눈을 감을 때까지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공부만 했다고 한다.

몇 개월 동안 방에 박혀 공부만 해서

저러다 쓰러지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였단다.

그렇게 남들은 일 년 이년 준비하는 시험을

굴샤는 반년만에 패스했다.


어릴 적부터 굴샤는 영어에 관심이 많았다.

처음 그녀와 펜팔을 시작했을 무렵, 우리는 초등학생이었고

영어를 단 한마디도 할 줄 몰랐다.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편지와 메일을 쓰던 굴샤는

어느 날 문득, 영어를 공부하는 게 즐겁다고 했고

나중에는 스스로 편지를 썼으며

지금은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하는

멋진 영어 선생님이 되었다.


사람이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된다는 것을 나는 어느 정도 믿는다.

그녀와 어릴 적 했던 말들이 대부분 다 이뤄졌기 때문이다.

영어가 좋다던 굴샤는 영어선생님이 되었고,

어릴 때부터 방송 pd가 되고 싶었던 나는 영상 제작자가 되었다.


언젠가는 꼭 만나자 버릇처럼 말했던 우리의 소망도

결국엔 이루어져서

직접 만나 함께 지내고, 여행하고,

이제 그녀의 직장에까지 따라가고 있다.


학교로 가는 출근길 차 안, 포근하고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앞으로도 예쁘고 멋진 꿈들을 많이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그게 다 이루어질 때가 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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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내가 입고 간 의상, 한국에서부터 엄마와 머리를 맞대고 고른 원피스와 친구들이 골라준 자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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