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공감

식초로 카레 만드는 여자.

이번 생애 요리는 힘들겠습니다.

by 소이

엄마는 한식 요리사.

아빠는 양식 요리사.

그런 부모님에게서 태어났지만

나는 요알못(요리 모른다는 뜻)이다.


두 분이서 옛날 경양식을 운영하시면서 장사에 지치셨던 터라

우리 딸 시집가면 평생 할 일 지금은 주방일 몰라도 된다~ 하며 애지중지 키우신 게 요알못이 되었다.


좋아하는 일도 업이 되면 좋아하는 마음이 무뎌질 텐데.

부모님께서는 요리가 업이셨으니 내 눈에 요리하는 모습이 그리 행복해 보였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요리가 싫었던 걸까?


좋아하지 않고, 잘 못하지만 그래도 결혼하면 그럭저럭 남들처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남들 다 한다고 나도 할 수 있다는 건 큰 착각이었다.






결혼 후 얼마간 선보인 요리들은 굉장했다.


신혼 때 퇴근하고 허기진 배를 움켜쥔 남편에게 나도 좀 있어 보이게 밥상을 차려주고 싶었지만

레시피 따라 하기 급급했던 나는 주로 냉동식품과 카레 같은 한 끼 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은 식초 통을 식용유 통으로 착각해서 결국 식초에 야채를 볶은 식초 카레를 내놓았고,

마지못해 남편이 꾸역꾸역 먹었다. 신혼 때니 가능했지 지금이면 어림도 없을 일이다.


아버님 생신 때는 며느리가 끓여드리는 미역국으로 생신상을 차려드려야지 싶어서

미역을 불린다는 게 양 조절을 못해서 불린 미역이 싱크대에 넘쳐날 만큼이 되었는데

말라비틀어진 작은 미역이 그렇게 많아질 줄은 정말 몰랐다. 얼마나 놀랐던지..

그뿐이랴.

생신상에 빠질 수 없는 잡채는 당면에 색깔이 하나도 안 입혀져서 하얀 잡채가 되었다.

그런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채운 생신상을 받으셨지만 며느리에게 상처가 될까 말도 못하시고

결국 아버님께서도 남편처럼 밥만 겨우 드셨다.


아직까지 놀림감이 되는 이야기들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찌 그리 감각이 없었나 싶다.

남들은 레시피 보고 대~충 따라 해도 먹음직스럽게 만들어내는데 나는 계량하는 것부터도 힘들었으니.

때문에 시댁에서는 지금도 음식이라 하면 맡기지도 않으실뿐더러 제발 밖에서 사 먹자고

부탁에 부탁을 하신다.


직장에서 퇴근할 무렵 모니터에서 눈을 못 떼던 나에게 김대리가 물었다.

"신혜씨 뭘 그렇게 보고 있어요?"

"아~ 만둣국 레시피요!^^ 퇴근하고 남편 끓여주려고요."

"그걸 레시피를 봐요?"

"이거 안 보고 끓일 수 있어요???"

..

..


그때 김대리는 얼마나 웃겼을까?


김대리! 나 이제 만둣국이랑 된장찌개는 잘 끓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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