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놀이

by 소이

오늘은 밤 10시에 노트북 끄고 더 이상 아무것도 안 해야지.

그렇게 노트북은 껐지만 책상을 떠나지 못하고 1시간 책을 읽었다.


이제 더 이상 진짜 아무것도 안 해야지. 빨리 씻고 눕자!

씻고 나와서는 또 1시간이 넘게 밀린 설거지를 하고 주방 정리를 했다.


새벽 1시가 넘었네. 또 늦어버렸네. 빨리 자야 하는데.

내일 비가 오려는지 습하고 텁텁한 공기가 느껴져서 선풍기 바람 조금만 쐬다가 자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결국 노트북을 열고 말았다. 글이 쓰고 싶어서.


새벽에 일어났을 때와 가장 비슷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시간.

그러니 빨리 잠들지 않고 작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면 결국 가장 큰 새벽의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새벽 1시를 넘어가고 2시가 가까워져 오면 세상이 온통 고요하다.


마음에서 몇 번씩 떠올랐다 사라지는 생각들을 찬찬히 들여다 보고,

이유 없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던 걱정들의 뿌리도 찾아보고,

괜히 바빠지고 지치는 오후 3시의 마음처럼 쫓기듯 했던 기분을 다독여주기 좋은 시간.

공기 중에 떠 있던 모든 것들이 모두가 잠든 시간 바닥에 차분히 내려앉는 것처럼.

내 마음 공간에 떠 있던 모든 것들도 차분히 내려앉는다.


"요즘 우리 아들 반찬은 뭐 해줬더라~ 너무 부실했네" 하는 안 해도 그만인 것 같은 생각도 냉장고 앞에서 하면 서럽고 괜히 나만 바쁜 것 같아서 억울하지만, 차분해진 새벽에 하면 다르다. 내일은 뜨끈한 국 하나 끓여야겠다 싶고, 떡이라도 사서 떡국 끓일까? 싶고 그렇다.


일에 허덕이는 새벽 말고,

하루를 열어야 하는 새벽 말고,

자기 계발해야 하는 새벽 말고,

모든 것이 차분하게 내려앉는 이 새벽이 너무 좋을 때가 있다.

오늘처럼.

새벽 놀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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