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정말 반려견

개는 뱀과 같다던 아줌마의 이야기

by 소이

올해 7월에 우리 집에 새 식구가 왔다. 사실 나는 강아지 트라우마가 있어서 동물이라면 질색인데, 나와는 반대인 남편은 아이가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었다.

"개를 키울 바에야 내가 둘째를 낳지!! 힘들어서 애도 못 낳겠다 싶은데 나보고 지금 개 똥 치우라는 말이야?!!!"


나는 강아지 이야기만 나오면 아주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정말 싫었다.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도 보호받지 못해서 가슴 아픈 일들을 겪는데 개는 무슨. 나는 동물을 싫어했고 아주 매몰찼다. 강아지도 견주도 싫었다. 지나다니다 마주친 강아지가 귀여워 보인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입마개 안 한 견주를 보는 날은 그렇게 부글부글 화가 치밀어 오를 수가 없었다. 나는 단순히 귀찮아서 키우기 싫은 감정을 넘어 나 스스로도 왜 이렇게까지 싫을까 싶을 만큼 싫어했다. 그러니 반려견이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우리 집에 강아지라니.


"자기야, 강아지는 진짜 사람한테 얻을 수 없는 그런 치유의 힘이 있어~! 자기처럼 싫다고 하는 사람도 한 달이면 모두 강아지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고 하더라~ 너무 그러지 말고 다시 좀 생각해봐~, 자기가 진짜 싫다고 하면 나는 절대 안 할 거야! 그렇지만 우리 아들도 혼자 크는데 강아지가 있으면 정서적으로 정말 좋을 거고, 자기도 진짜 좋을 거야 분명해~"


한번 시작된 남편의 강아지 타령은 틈만 나면 반복됐다.


"오빠! 내가 강아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줄까?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나한테 강아지는 뱀이랑 같아! 물것 같고, 공격할 것 같고, 부담스러운 존재야. 일단 나는 강아지 입 벌리는 게 너무 무섭고, 그 무서운 존재가 집 안에서, 내 공간에서 맴돌고 있는 걸 생각하면 난 아마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을 거야! 알겠지? 내가 얼마나 강아지를 싫어하는지!!!"


어릴 때 동생이랑 밖에서 놀다가 엄마, 아빠도 없는 공간에서 큰 개가 우리를 공격한 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 내가 몇 살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고, 내 동생은 나보다 세 살이 어리니 고작 네 살쯤 되었지 않을까 싶다. 큰 개의 견주는 목줄도 하지 않은 개가 우리 근처를 맴돌며 다가오기 시작했을 때 물지 않는다며 괜찮다고 했고, 동생과 나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도록 울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나는 나보다 어린 동생이 다칠까 봐 동생을 가로막고 있었는데 점점 다가오는 큰 개에게 느끼는 공포는 상상밖이었다.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내가 그런 공포를 겪는 와중에 짓고 있었던 견주의 표정이. 계속 웃으면서 물지 않는다고 했던 그 말이. 결론적으로 그 개는 우리 남매를 물지 않았다. 그러니 그 견주의 말대로 우리는 공격받은 게 아닐지 몰라도 내 기억 속에는 선명하게 공포로 남아있다. 그러니 개가 공격하지 않은 거라면 견주가 공격한 것이다.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입에 담기 힘든 충동적인 감정이 떠오른다.



강아지를 키우는 상상을 하면 항상 그 기억이 같이 떠올랐다. 강아지의 귀여운 얼굴과는 상관없이.

그래서 힘들었다. 남편을 생각해서 그럴까 싶다가도 그런 상상 뒤에 따라오는 분노를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 만큼이나 동물을 간절히 원하는 남편 때문에(가만히 있던 아들까지 가세해서) 방법을 찾아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결국 우리 부부의 타협점으로 새끼 강아지가 접종이 끝날 때까지만 집에 키우고 접종만 마치면 남편이 가게에 데려가서 키우기로 했다.



강아지가 오기로 한 날.

몇 시간 만에 새 보금자리로 온 강아지는 너무 작았고, 조금 불쌍해 보였다. 그렇다고 안아주고 싶다거나 보호해주고 싶다기보다는 그냥 같은 반 전학생 보듯 조금 신기한 마음이었다. 작은 덩치에 비해 강아지에게 내어줘야 하는 거실 공간은 생각보다 컸다. 1차, 2차, 3차... 접종은 생각보다 꽤 길었고, 그 사이 강아지는 중성화 수술까지 해서 집 밖을 나갈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 오줌, 똥을 싸는 통에 몇 번이나 남편에게 짜증을 쏟아냈지만 그렇게 강아지는 서서히 집에 적응을 했고 나도 강아지에게 적응을 했다.


4개월 차.

이제는 적어도 우리 집에 있는 강아지는 무섭지 않다. 또 동물을 학대하고 동물을 자기의 장식품처럼 생각하고 대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화가 난다. 공생의 의미를 알 것 같다. 다행히도 이제는 배변도 아주 잘 가려서 남편이 매일같이 천재견이라 칭찬하며 나를 힐끔 쳐다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직까지 나는 좋아 죽겠다거나 강아지한테 이것저것 다 해주고 싶다거나 그런 마음은 들지 않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견주를 보고 화가 나지는 않는 것 같다. 남편은 아니겠지만 나한테 만큼은 어쩌다 키우게 된 강아지일 뿐이었는데 이제는 서서히 가족이 되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가게로 데리고 가겠다던 남편의 짜인 각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강아지 사료 시간을 챙기고, 배변패드를 치우면서 내 트라우마도 치유가 된 건 아닐까? 그렇게 보면 남편이 말하던 치유의 힘이라는 게 조금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도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이제 강아지가 가게로 갈 일은 없어 보인다. 아직까지 매일 산책의 문턱을 넘어보지는 않았지만 반려견 케어의 8할은 남편의 몫이니까! 나는 좀 더 잘 지내보려고 한다.


이제는 진심을 담아서 이야기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네가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모야! 잘 지내보자.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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