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같은 기분으로 빠져들기 전, 감정이 덜 요동치던 날에 2023 버킷리스트를 작성했었다. 최근 같은 기분이었으면 몇 개나 적을 수 있었을까 싶은데 그때는 여러모로 에너지가 남아있던 시기였는지 25개의 리스트가 기분 좋게 써져있었다.
3년째 버킷리스트를 쓰고, 수정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느낀 것은 "쓰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일은 "설마 내가 이걸 이루겠어?"라는 생각으로 썼던 것도 있었고, 할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고민하며 조금 소극적으로 썼던 것도 있었다.
11월 중순을 향해가며 연말을 준비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열어본 누적 버킷리스트에는 진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꽤 많이 이루어져 있어서 놀라웠다. 어떤 일은 소름이 돋았다. 계획대로 되지 않은 일들도 있었지만 달성하지 못한 일들을 상쇄시킬 수 있는 건 다 버킷리스트 덕분이었다.
"왜 그렇게 스스로 닦달했을까?"
스스로에게 충분히 칭찬해주지 못했던 시간들은 나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들었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기운이 마이너스로 바뀌는 기분이 들었고 블랙홀처럼 빠져나오기 힘들었었다.
더 이상 억지로 하려고 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은 후 즐거운 일들로 시간을 채우면서 서서히 좋아졌다. 다독이며 무조건 쉬게 해 주니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고 자주 웃을 수 있게 됐다.
내년 버킷리스트를 보면서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운동화 끈 동여매고 내년도 달려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조금은 생기는 것 같다. 역시, 안 되면 안 한다는 마음을 먹길 잘했다. 더 이상 스스로 옭아매지 않고 자유로운 시간을 허락할 때 다시 할 수 있는 에너지도 생긴다는 걸 느낀다.
꿈이 있어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을 마음속으로 크게 공감한 날.
이제 더 소중하게 리스트를 채워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