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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이 Nov 12. 2022

안 되면 안 해보겠습니다

한 동안 하는 일마다 전전긍긍했었다. 하다가 그만두면 해 놓은 것들이 다 무너질 것 같고, 무언가 더 쌓아 올리기에는 더 이상 여유가 없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하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았다. 조금씩 괴롭다고 느끼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무언가 기록하고 쓰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쓰지 않을 수도 없었다.

아무것도 쓰지 않기에는 차오르는 마음을 감당할 곳이 없었기 때문에.


일을 해도, 안 해도 힘들었고.

글을 써도, 안 써도 힘들었다.

모든 일이 이런 식이었다.


보통은 해도, 안 해도 힘들면 하는 편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안 하는 쪽을 선택해 보기로 했다.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잘 쓰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굳이,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과정 역시 관성을 거스르는 일처럼 쉽지 않았지만.

열정도 내려놓고,

욕망도 내려놓았다.


처음에는 이것이 포기하는 것인지, 조절하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많은 것을 용인하고부터 끊임없이 나를 잡아당기던 끈 하나가 강렬하게 소리 내며 끊어지는 기분이 들었고, 조절에 더 가까운 선택이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요즘은 많이 편안해졌다.

 

기분 좋은 일, 즐거운 일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퍼스널 컬러 진단도 받아보고,

화장품 쇼핑도 해보고,

어울리는 옷도 사보고.


돋보기를 들고 관찰하듯 내면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겉모습으로 돌려보니 내면도 잠시 쉴 곳을 찾은 듯했다. 좋아하는 향을 맡고, 평소에 먹지 않던 새로운 음식을 먹고, 평소에 가지 않던 곳을 가면서 즐거움을 느꼈다. 마음껏 감탄하면서 먹고, 활짝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많은 풍경들을 감상했다.

지금, 여기, 현재를 사는 기분이 들었다.


지친 마음에는 볕이 들기 시작했고, 남아있던 축축함은 따뜻한 바람에 기분 좋게 건조됐다.


잘 굴러가던 일상이 삐걱댈 때가 있다.

잘 되던 것이 안될 때가 있다.

잠시 멈추고 다시 채비를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때가 지금이었나 보다.


안 되면 안 해보겠습니다.

그래야 또 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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