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
2020년 최고의 영화를 꼽으라면 아마도 <1917>을 꼽지 않을까 싶다. 영화라는 것은 상상력의 산물이라 불린 만큼 가상의 세계 혹은 근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유일한 소비재일까 SF 혹은 디스토피아를 다룬 영화들이 개봉하는 소식이 전해져 오면 유독 대중들의 관심이 쉽게 쏠리는 것 같다. <1917>이 SF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영화임에도 구구절절 이야기한 이유는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다가간 방식이 ‘상상력의 산물’이라 할 만큼 놀라웠기 때문이다. 감히 생각이나 해 보았을 것을 이 영화는 시도했고 성공했고 완벽했다.
이 영화를 통해 느낀 '전율'
영화를 즐겨 보시는 분이라면 한 번쯤 ‘롱테이크’라는 촬영 기법을 들어 보셨을 것이다. 롱테이크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영화의 쇼트 구성 방법 중 하나. 1~2분 이상의 쇼트가 편집 없이 길게 진행되는 것”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1~2분’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영화 <1917> 통으로 모든 컷을 이어 붙여 하나의 거대한 타임라인을 구축하였다. 영화와 관객이 동일한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느린 호흡이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했고 충분히 지루하게 느껴질 지점이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 열광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시간을 공유한 것과 동시에 주인공과 동행했고 그들이 받은 미션은 단순히 그들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 아니었을까.
샘 멘데스가 선택한 '배우'
처음 주연과 조연에 적힌 출연진을 보고 오류가 아닐까?라는 의문점이 들었다. 두 주연은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었고 반대로 조연의 출연진은 너무나 화려했기 때문, 어떤 의도였을까? 샘 멘데스의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었던 사실은 불가능해 보이는 이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두 인물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이야기가 되길 원했고, 그래서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두 배우를 선택하였다고 한다. 그의 의도를 고려한다면 어느 정도 성공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마어마한 네임벨류를 자랑하는 조연들 역시 중간중간 적절하게 배치되어 극의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잘 이어주었고, 그들의 분량은 몇 분이 되지 않은 작은 역할에 불과하나 영화 내에서 행사하는 영향력은 수치상으론 해석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시간’과 싸운 그들.
<1917>은 ‘시간’과 많은 접점이 있다. 이색적인 촬영기법으로 관객들과 영화 속 주인공의 ‘시간’을 공유하면서 주인공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시간’과 씨름한다. 1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하면서 적군은 거의 등장하지도 않으며 액션도 비교적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혹 큰 스케일의 액션을 기대했다면 이 영화는 최악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1917>은 극도의 리얼리즘으로 타 액션과는 다른 방법으로 쾌감과 짜릿함 그 이상을 선사해주었다. 전쟁을 표방하면서도 ‘시간’이란 키워드를 활용해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듯 마지막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전진하는 병사들과 그것을 막기 위해 횡으로 뛰는 주인공의 질주를 담은 시퀀스는 영화로서 처음 느껴보는 또 다른 울컥한 감정이었다.
그리고 <1917>
이 영화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전쟁 영화가 아닌 전쟁 영화”
‘영광도 영웅도 없었지만, 인간은 있었다. 그렇기에 기록된다’ 시체들이 즐비한 전쟁터속 주인공 ‘스콧필드’가 전달한 그 종이 한 장은, 그 인간의 생에 대한 스토리였고 정복을 목적으로 벌인 이 전쟁 속 희생된 사람 모두의 이야기였다. 1917년 그날엔 영웅도 영광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인간만 있을 뿐. 하지만, 인간이 있었기에 <1917>이 향했던 우직했던 그 걸음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고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