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내 생일이었다.
엄마랑 외식하러 가기엔 엄마 컨디션이 너무 별로라 -만능 해결책- 컬리에서 새벽배송으로 좋아하는 당근 케이크, 라자냐, 샐러드 등을 주문해서 편하게 홈브런치를 즐겼다.
식사 중 엄마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엄마 사진 볼래?’ ‘… 응’ ‘그래 다 먹고 꺼내 줄게’
나를 낳은 엄마와 지금의 엄마가 같지 않다는 건 대학 다닐 때 알게 됐다.
세 살 무렵 엄마는 다들 심각히 생각 안 한 수술을 받으러 들어갔고 그렇게 나오지 못했다. 많이 갑작스러웠다고 한다.
엄마 사진을 전에도 본 적은 있다. 난 아빠 판박이라 엄마 사진을 보면 닮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냥 낯설다. 오히려 지금의 엄마랑 다니면 많이 닮았단 소리 듣는다.
그렇게 오랜만에 보게 된 돌아가신 엄마의 사진. 그러고 자세히 보니 큰 동생이 엄마를 닮았다. 많이는 아닌데 부분적인 느낌이 닮았다.
나와 큰 동생은 돌아가신 엄마가 낳으셨고 막내는 아빠 재혼 후 태어났다.
자라면서 단 한 번도 엄마가 다르다는 생각은 꿈에도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내가 만 네 살이 되기 전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아빠의 재혼은 빨랐다.
친할머니가 계속 어린 나와 동생을 돌보기 힘든 상황이기도 했고. 만 네 살 이전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아빠가 내가 더 크기 전 서둘렀다고 한다.
엄마한테 물었다. 아빠는 그렇다지만, 엄마는 급하게 왜?
엄마가 처음 우릴 보러 온 날 내가 그렇게 좋아했더란다. 골목에 나가 나도 엄마 왔다고 자랑하고 다녔단다. 그래서 엄마가 되어 줄 수밖에 없었다고, 나한테 코 꿰었다고 하신다.
돌아가신 엄마의 사진을 챙겨 넣고 엄마한테서 봉투 하나를 받았다. 아빠가 어린 나에게 쓴 편지다. 편지가 있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받아 읽어보진 않았었다. 누런 종이에 쓰인 편지.
서른 중반의 남자가 네 살, 딸에게 술 한잔하고 마음을 쏟아낸 편지.
누런 납품명세서 뒤에 휘갈겨 써낸 열 세장의 편지가 ‘사랑하는 효진아. 내 딸 효진아’로 시작해서 그렇게… 있다.
다 못 읽었다. 그냥 두고 읽고 싶을 때 읽으려 한다.
아빠는 십오 년여를 신장 투석을 하고, 그 합병증으로 곳곳이 아프다가 재작년 가을에 돌아가셨다.
오래 편찮으셔서 간병하는 가족들은 정말 많이 미워도 했다가 원망도 했다가 애틋해하기도 했다가 안쓰럽기도 했다가 정말 오만가지의 감정을 겪었다.
그래서 아빠가 갑자기 힘들지 않게 돌아가셨을 때 우린 오히려 감사했다. 더 아프지 않아도 되고 고생 없이 편안히 돌아가셔서.
재작년 한창 그림을 많이 그릴 때, 아빠도 그리고 싶은데 아빠의 웃는 사진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같이 나들이 갔을 때도 뚱한 표정의 사진뿐이다.
그냥 정면 잘 나온 사진으로 아빠를 그렸다. 그려 놓고 내심 나중에 좀 환한 모습 찾아 한 번 더 그려야지 했었다.
아빠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 놓을 사진 찾는데 영정사진으로 찍어 논 사진이 이미 있었지만, 동생이 동생 결혼식 때 환하게 웃는 아빠 사진을 찾았다. 그때가 아마 아빠 인생에 즐거웠던 날 중 꼽히는 날이었을 거다.
좋았다.
마지막 사진이 환하게 웃는 사진이라, 그렇게 우리 아빠의 인생도 웃으며 안녕할 수 있는 거 같아서 좋았다.
그렇게 아빠 생각이 좀 많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