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열심히 치던 때, 그때 꽤 여러 곡을 쳤었다.
그때 쳤던 곡들은 정말 다 의미 있게 기억난다. 우리끼리 주기적으로 연주회를 하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완성도 있게 하려 열심이었다.
물론 우리끼리 하는 말로, 어른 돼서 치니 레퍼토리는 느는데 실력은 안 늘었었다.
혼자 연습실에서 베토벤 <비창> Sonata 전 악장을 땀 흘리며 치고 그렇게 뿌듯해했었고, 브람스 Intermezzo op.118-2치며 센티했었고, 한 번 외워서 쳐 보겠다고 쇼팽 Polonaise <Heroic>을 무한반복으로 치기도 했었고.
그렇게 순수하게 열정을 쏟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6월의 끝자락.
왠지 감성적인 마음도 생기는 생일 즈음. 이맘때 뭉뜬 그려 떠오르는 곡과 이미지가 있다.
쇼팽 Scherzo No.2.
그리고 영화 <아이 엠 러브>.
이 곡을 혼자 열심히 연습하던 중에 변주가 되는 부분에서 갑자기 <아이 엠 러브> 속 틸다 스윈튼의 오렌지색 원피스가 떠올랐다. 눈부신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는 오렌지색.
강하게 약간은 방정맞게 시작되어 화려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로 이어지다가 다시 앞부분이 반복되고. 그러다 느리게 마치 오렌지색 원피스를 입은 틸다 스윈튼의 천천히 걷는 걸음에 맞춘 듯한 그 부분에서. 찰나의 순간으로 소리와 이미지와 피아노 치는 내가 그대로 프레임 됐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은 아주 뜨거운 한 여름이 아닌 6월로 나에게 각인 됐다. 아마 피아노 치는 나를 포함한 이미지이기에 나에게 의미 있는 6월이었을 거고, 나중에 그 오렌지색 원피스에 프레데릭 레이튼의 <Flaming June> 이 같이 더해져 6월이 되었을 거 같다.
그렇게 나만의 이미지로 지금 이 시간들을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