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하던 내내 자유로운 여행을 갈망하던 나는 시험이 끝나자마자 나는 시험을 같이 준비하던 친구와 함께 제주도로 날아갔다.
우리는 그 여행 도중에 한라산 등반을 하기로 했다.
세계적인 전염병의 유행으로 등산조차 자유롭게 가지 못한다.
한라산을 등반하려면 미리 예약을 하고 정해진 인원수만 정해진 시간에 등반을 시작하게끔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당연히 사전에 예약을 해두었는데 하필 우리가 등반하게 된 날은 비가 하루종일 내리는 날이었다.
계획을 틀기도 귀찮고 건강한 남자 둘이 별일 있겠나 싶어 강행하기로 했다.
나랑 같이 여행을 가게 된 친구는 꽤나 계획적인 성격이었다.
등산을 위해 미리 등산화를 구입하고, 비를 대비해 좋은 우비를 준비했으며, 몇시간 내에 어디를 통과해야 정상에 갈 수 있는지 미리 파악하고 이를 나에게 설명해주었다.
그에 비해 나는 다 떨어진 운동화를 산고, 편의점에서 산 우비를 입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오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등반을 위해 식량 등을 구입하느라 우리는 열한시가 되어서야 입구에 도착할 수가 있었는데 매표소 직원은 열두시 반까지 진달래밭 대피소를 통과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정산까지 오르는게 통제된다고 경고하였다.
그리고 거기까지는 대략 3시간이 소요되기에 우리가 절대 진달래밭 대피소에 갈 수 없을거라고 호언장담하였다.
다급해진 우리는 90분 안에 통과할 수 있을거라고 열의를 불태우며 빠른걸음으로 등반을 시작했다. 초반엔 완만한 길이라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비는 갈수록 세차기 내렸고 올라가면 갈수록 온도가 내려가 중간 이후부터는 온통 눈밭이었다. 아직 한라산에 눈이 녹지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더 올라가니 비가 눈으로 바뀌었고 거기서 더 올라가니 우박과 비슷한 형태로 우리 얼굴에 쏟아져내렸다.
처음은 음악을 틀고 흥겨운 마음으로 오르기 시작했으나 조금 지나자 이미 운동화는 빗물이 다 들어가 흥건히 젖어버렸고, 츄리닝 바지는 물을 계속 머금으며 무거워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음식도 조금만 싸갔어야 했는데 김밥에 떡에 한라봉까지 싸느라 그 중량이 체력의 소모를 가속화시켰다.
중간 이후부터 우리들의 대화는 줄어만 갔다.
내가 친구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은 철저한 과오였다.
눈이 녹지 않은 곳에 이르자 내 운동화로는 제대로 오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젠같이 미끄럼 방지하는 물품도 없었고, 등산객들이 사용하는 지팡이 같은 것도 없었다. 친구는 등산화라 나보다 미끄러움이 덜했으나 그래도 힘들어했고, 나는 미끄러움을 이겨내기 위해 신경쓰느라 갈수록 힘들어졌다.
이미 정상에 오르고 내려오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내 신발을 보더니 끌끌 혀를 찼다. 그거를 가지고 어떻게 정상에 오르겠냐고 무모하다고 웃으신다. 나는 친구한테 미안함을 느끼며 제한 시간내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달하기 위해 애를 썼다.
우리는 아직 젊은편이어서 그런지 놀랍게도 90분 안에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했다. 거기 도착하자 12시 20분정도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우리는 진달래밭 대피소를 통과하자마자 주저앉아 초코바를 먹었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정상까지가 문제였는데 가파른것도 그렇고 눈이 얼어버려 더욱 미끄럽고 위험했다. 그렇다고 옆에 잡고갈만한 줄이 계속 있는것도 아니어서 지도상으로는 더 완만하다고 표기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우리 체감상으로는 어째 이 구간이 더 힘들다고 느껴졌다. 그래도 꾸역꾸역 올라가 어느덧 정상 500미터 전까지 등반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가 더욱 문제였다. 우박모양의 눈싸라기가 우리의 얼굴을 내리치며 강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근처 나무들도 아래보다 적어 바람을 충분히 막아주지 못했고, 얼굴을 때리는 얼음알갱이의 충격이 가뜩이나 얼어붙어가는 얼굴을 더 아프게 했다.
몸까지 흔드는 바람을 마주하자 우리는 마주보고 웃으며 어떻게 할지를 고민했다.
여태까지 우리는 정상을 오기 위해 이런 갖은 노력을 다했는데 여기서 포기하기가 참으로 아까웠는데, 그렇다고 강행하자니 떨어질대로 떨어진 체온과 눈싸라기 강풍의 위협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정상에 올라간다 해도 우리가 김밥을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어느정도 목적을 이룬 것이라는 판단 하에 올라올 때보다 더욱 위험한 내리막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다시 걸어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하니 너무도 배가고파 김밥을 먹고 오메기떡과 한라봉도 먹었다. 잠시 쉬었을 뿐인데 몸의 땀이랑 비가 기화되며 열을 빼앗아 가 그런지 온몸이 덜덜 떨렸다.
위험하다고 생각한 우리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좀 걷기 시작하자 다시 땀이 나서 쉴 때보단 괜찮아졌다. 그렇게 말없이 올라온만큼 한참 한참을 내려가고 내려가다 겨우 차에 도착했고, 젖은 옷을 갈아입고 히터를 만땅 틀게되자 비로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등반은 오후 4시반이 되어서야 끝나게 되었다.
한라산 등반을 마친 우리는 곧장 해수온천으로 이동해 두시간 가량 충분히 몸을 녹였고, 해산물 덮밥을 먹고 피맥을 하며 그날 우리의 무용담을 웃고 떠들며 마무리 지었다. 아프지 않고 잘 돌아온게 참 다행이라는 얘기를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남은 날들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제주도에서 지내던 시간 내내 즐거웠으나 이상하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라산을 올랐던 것이다. 가장 힘들고 위험하고, 정상도 보지 못했는데 왜 그 기억이 가장 인상적인 것일까.
그날 하루를 돌아보면 계속 고통의 감정 뿐이었다. 몸이 떨리는 추운 날씨와 옷에 스며들어 눅눅해지게 하는 빗방울, 미끄러운 길들 등 괴로움을 부르는 요소들이 너무도 많았다. 우리는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생기를 잃고 말이 줄어들었으며 어느덧 생각없이 정상에 오르는 것만을 계속하고 있었다. 처음 생각에는 분명 등반이 우리에게 기쁨과 상쾌함을 줄 것이라 여겼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저 괴로운 주된 감정 속에서도 가끔씩 오는 상쾌함은 분명히 있었다. 은은한 안개 속에 보이는 수목들은 마치 지브리의 세상속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왔고, 빗방울들 사이로 전해지는 풀들의 냄새는 더욱 신선하게 다가왔다. 특히 눈덮인 산에 비가 내리는 광경은 이질적이면서 신비로운 느낌을 불러왔다.
만약 내가 와보지 않았다면 이런 감정을 다른데서 얻을 일이 있었을까?
어찌 이리 짧은 등반이 삶과 닮아 있는지 모르겠다.
내 삶을 돌아보면 꼬맹이 때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삶은 상쾌하고 즐거움으로 가득한 것이 아니고 답답함과 괴로움이 더 많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런 연속적인 괴로움 답답함 속에서 행복은 잠깐씩 나를 스쳐지나갔을 뿐이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그 짧게 지나간 행복한 추억들이 나머지 괴롭고 답답한 과정들을 어떻게든 해나가게 해준다. 분명 이 산을 오르는 과정이 나를 많이 힘들게 할지라도 언제 보게될지 모르는 동화같은 그 풍경을 기대하며 나는 계속해서 가방을 지고 젖은 옷을 입은 채 이 길을 걸어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내 노력에 화답하듯 그러한 풍경은 반드시 나를 찾아온다.
한참 걷다가 무심코 멈춰섰을 때 어느덧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로운 풍경들이 나를 감싸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 기억은 그 등산이 끝난지 한참 된 지금까지도 나를 미소짓게 할만큼 강력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분명 우리네 삶은 깨끗하고 상쾌함의 연속은 아닐 것이다.
그 괴로움과 답답함에 압도되어 초반부터 주저앉고 포기해버리고 싶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참고 계속해서 걸어나간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짧은 행복들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우연히 얻어지는 그 짧은 행복들만으로도 우리 삶은 충분히 가치있는 과정이 아닐까.
오랜 친구들과 보낸 유쾌한 술자리, 사랑하는 사람과 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볼 때의 그 전율, 부모님의 무한한 사랑을 느낄 때의 편안함, 나를 믿고 신뢰하는 사람들을 곁에 둘 때의 안정감.
어쩌면 우리는 처음부터 백록담까지는 볼 필요가 없던 것일지도 모른다.
백록담을 보는 것보다 잠깐 멈춰서서 보이는 풍경들만으로도 여기 오르기를 잘했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삶에서 마주할 행복한 그 풍경들이 얼마나 더 남았는지 모르겠으나, 꽤나 오랫동안 내가 스스로를 믿고 이 길을 계속해서 걸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비록 이길을 걷기 시작할 때 도달하고 말 것이라는 지점까지 가지 못할지라도 몸이 너무 상하지 않을 때까지 계속해서 걷다가 미련없이 돌아온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