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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날은 언제나 멀다 (ep.24)

균열과 균형 사이

by lululala


#24. 신랑님, 거기 아니에요!


오늘은 홍보팀 김주연 대리의 결혼식 날이다.

평소라면 한창 회의와 업무로 바쁘게 돌아가던 사무실이었겠지만, 오늘은 환한 미소와 따뜻한 축하가 가득한 결혼식장에서 동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결혼식이 열리는 곳은 포근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감도는 웨딩홀.

입구에는 신랑 신부가 환하게 웃는 행복한 순간이 담긴 웨딩 사진이 놓여 있고, 하객들은 한 손에 축의금 봉투를 든 채 차례로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있었다.


부드러운 클래식 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가운데, 곳곳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동료와 친구들이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테이블마다 은은한 느낌의 꽃장식이 놓여 있고, 촛불이 은은하게 빛나며 부드러운 분위기를 더했다.

오늘 결혼하는 주인공이 아니었지만 결혼식을 기다리는 모두의 얼굴에는 설렘과 기대가 가득했다.


그리고 바로 옆, 화려하게 수놓은 하얀 문 뒤로 오늘의 주인공, 김주연 대리가 있었다.

신부대기실은 부드러운 크림색 커튼과 화려한 꽃장식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녀의 뒤편에는 신부 도우미가 드레스와 메이크업을 점검하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정말 결혼하는구나…” 김주연 대리는 거울을 바라보며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지난 몇 달 동안 결혼을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던 그녀는, 드레스를 입은 오늘에서야 결혼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제 곧, 평생을 함께할 사람과 새롭게 시작한다는 생각에 기쁨과 걱정이 교차했다.

그 순간, 문이 살짝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 대리님, 우리 왔어요!”

홍보팀 동료들이 신부대기실로 들어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맨 앞에는 문성태 팀장이 서 있었다.

“김 대리, 오늘 정말 최고네요. 우리 팀에서 드디어 신부가 나오는군!”

그는 환하게 웃으며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곧이어 오혜진 인턴이 탄성을 질렀다. “와… 진짜 공주님이세요! 드레스 너무 잘 어울려요.”

“역시 신부는 신부네요. 대박입니다.” 옆에서 박진수 주임도 한마디 거들었다.


김주연은 멋쩍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다들 너무 과찬이에요. 저보다 드레스가 더 빛나는 것 같아요.”


그러자 박진수가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최 이사님 지금 떨면서 기다리고 계실걸요? 혹시 몰라요, 긴장해서 손에 땀 흘리고 있을지도.”


“맞아, 맞아! 아까 보니까 긴장했는지 얼굴도 좀 빨개진 것 같던데요.”

오혜진이 웃으며 맞장구쳤다.


그때, 지역개발사업팀의 조민서 대리와 나정원 주임, 그리고 이준혁 과장이 들어왔다.

“김 대리님, 결혼 축하드려요! 오늘의 주인공이네요.”

“드디어 그날이 왔어요! 신부대기실에서 이렇게 보니까 진짜 실감 나네요.”


김주연은 반가운 얼굴로 손을 맞잡았다.

“와줘서 너무 고마워요. 회사 일이 바쁜데도 이렇게 다들 와줘서…”


“그야 당연하죠! 우리 김 대리님이 결혼하는 날인데.”

조민서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때까지 조용히 서 있던 윤태경 과장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그의 표정은 어딘가 차분하면서도, 묘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축하합니다, 김 대리님. 오늘,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김주연은 그를 바라보다가, 살짝 미소 지으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과장님.”


김주연이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마주한 그의 눈빛은 짧은 순간 흔들렸지만, 이내 다시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애써 마음을 다잡고 있는 듯했다.


그때 문성태 팀장이 긴장한 신부를 풀어주고 싶었는지 장난을 쳤다.

“김 대리, 혹시 마지막으로 도망갈 생각은 없죠? 하하”


“무슨 소리예요! 이제 와서 어디 가겠어요.”

김주연은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었다.


“빨리 대리님이 입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정말 예쁠 것 같아요.”

조민서가 김주연에게 용기를 주려고 말을 건넸다.


“고마워요. 조금만 기다려줘요. 저도 곧 준비하고 갈게요.”

김주연이 그 마음을 알았는지 미소를 띠며 화답했다.


그렇게 신부대기실은 동료들의 축하와 웃음으로 가득 찼고, 결혼식장은 어느새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결혼식이 시작되기 전, 하객들이 하나둘 자리에 앉더니 어느새 홀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홍보팀과 지역개발사업팀 직원들도 앞쪽에 자리를 잡고 웨딩홀의 화려한 장식을 감상했다.


천장에는 은은한 샹들리에가 빛나고, 하얀 꽃으로 장식된 버진로드가 길게 뻗어 있었다.

기분 좋은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직원들은 저마다의 감정을 안고 결혼식의 순간을 기다렸다.


그때, 박진수 주임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결혼… 참 쉽지 않은 선택이죠."


조민서 대리가 기다렸다는 듯 맞장구쳤다.

"그러게요. 요즘 직장 생활하면서 결혼 준비하는 거 자체가 진짜 어렵잖아요. 퇴근하고 웨딩드레스 보러 다니고, 예식장 예약하고, 신혼집 구하는 거까지… 그거 다 할 시간이나 있나요?"

"맞아요. 주말마다 결혼 준비 때문에 데이트도 데이트가 아니던데요?"

오혜진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 친구도 작년에 결혼했는데, 양가 부모님 의견 조율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결혼식 준비가 아니라 거의 프로젝트 매니징 수준이래요.”

조민서도 남일 같지 않은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긴… 양가 인사하고, 웨딩홀 예약하고, 청첩장 만들고, 집 구하고, 혼수 준비하고, 사진 촬영하고, 챙길 게 한두 개가 아니지."

문성태 팀장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래서 저는 결혼 생각하면 일단 한숨부터 나와요. 주변에서 결혼하면 행복할 거라고 하면서도, 정작 결혼한 사람들은 ‘아직 하지 마’라고 하니까요."

조민서가 목소리를 낮추며 조심스럽게 맞장구쳤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준혁 과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 말 진짜예요. 저는 결혼하고 나니까 제 시간이 확 줄었어요. 특히 애 낳고 나면 진짜… 회사에서 야근하고 있으면 괜히 미안해지고, 집에 가면 또 육아 도와야 하니까 퇴근 후에도 쉴 틈이 없어요."


"헉, 그럼 육아휴직도 쓰셨어요?" 박진수 주임이 물었다.


"그럼요. 안 쓰면 와이프가 저를 가만히 안 놔뒀을 거예요."

이준혁이 농담처럼 말했지만, 표정에는 피곤함이 스며 있었다.


"근데 육아휴직 쓸 때도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회사에서는 ‘육아휴직이 당연한 권리’라고 하면서도, 정작 쓸 때 되면 분위기가 애매해요. 돌아오고 나서도 ‘일 감각이 떨어졌네’ 같은 말 들을까 봐 신경 쓰이고요."


그 말을 듣던 나정원 주임이 한숨을 쉬었다.

"진짜 우리나라에서 맞벌이하면서 아이 키우는 거… 상상 이상으로 힘들 것 같아요. 특히 엄마들은 육아휴직하고 돌아오면 업무 배치도 애매해지고, 경력 단절 걱정도 해야 하잖아요."


조민서 대리도 씁쓸하게 덧붙였다.

"그런 거 보면 결혼하고 출산하는 게 축복이 아니라 생존 전략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그 순간, 문성태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요즘은 결혼 안 하는 사람들도 많지. 하지만 현실적으로 결혼이 필요해요. 회사에서 퇴근하고 나면 결국 혼자고, 누군가 같이 있다는 안정감이 필요할 때가 있으니까."


"그래도 저는 사내 결혼은 좀 꺼려져요." 오혜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회사에서 매일 같이 얼굴 보면 질릴 것 같아요. 그리고 만약 헤어지면…? 어우, 상상만 해도 불편해요."


"사내 연애도, 결혼도 장단점이 있죠." 이준혁 과장이 말했다.

"하지만 솔직히… 김주연 대리님은 잘 선택한 것 같아요. 최 이사님이랑 성격도 잘 맞고, 안정적인 커리어도 있고, 서로 존중하는 관계잖아요."


"결혼이란 게 결국 누구를 만나느냐가 가장 중요하지." 문성태가 덧붙였다.

"힘든 점이 많더라도, 함께 견딜 수 있는 사람이면 의미 있는 일이 될 테니까.”


직원들이 각자의 의견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이어가던 그때, 윤태경 과장은 웨딩홀 한쪽에서 조용히 단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대화에 끼지 못한 채,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흘려듣고 있었다.

"결혼이라…" 그가 머릿속으로 중얼거렸다.


오늘의 주인공인 김주연 대리,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신부대기실에서 동료들을 맞이하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아니, 틀림없이 행복할 것이다.

"내가 조금만 더 용기를 냈다면…" 예전의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김주연이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던 순간.

회의 중에 진지한 표정으로 의견을 내던 모습.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즐겁게 대화하던 장면들.

그녀를 몰래 바라보던 수많은 순간들.


하지만 결국,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고백 한마디 못한 채,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다른 사람의 신부가 되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결혼식이 시작되고,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천천히 안내했다.

"지금부터 김주연 양과 최도현 군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하객들은 조용히 숨 죽이고 웨딩홀을 바라보았다.

먼저, 검은 턱시도를 입은 신랑 최도현 이사가 입장했다.

최 이사의 유니크플랜트 직장 동료들도 이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긴장한 나머지 발걸음이 어색했다. 그리고 자리 배치를 헷갈린 듯, 엉뚱한 곳에 서 버렸다.

사회자가 당황하며 작게 속삭였다. "신랑님, 저기 아니고… 네, 네! 여기요!”

하객들 사이에서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신랑은 머쓱한 표정으로 빠르게 제자리를 찾았고, 홍보팀 직원들은 작게 킥킥거리며 속삭였다.


"아, 저거 보세요. 신랑님 완전 얼어버리셨다."

"이거 긴장하면 원래 저런가 봐요. 엄청 귀엽네."


신랑이 허둥지둥하던 사이 웨딩홀 뒤에서 신부 입장이 시작되었다.


김주연은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걸어 나왔다.

하얀 드레스 자락이 부드럽게 흘러내렸고, 고급스러운 베일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그 모습에 최도현은 순간 멍하니 서서 신부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가 해야 할 건 신부를 맞이해 손을 잡는 것이었지만, 그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채, 그냥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고 작게 웃으며 말했다. "신랑님, 이제 신부님의 손을 잡아주셔야 합니다."

하객들 사이에서 또 한 번 웃음이 번졌고, 신랑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허겁지겁 신부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신부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왜 그렇게 놀란 사람처럼 보고 있어요?"

신랑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무 예뻐서, 잠깐 할 일을 잊었어."


김주연은 수줍은 듯 웃었고, 홍보팀 직원들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둘은 나란히 서서, 결혼 서약을 하기 위해 단상 앞으로 걸어갔다.


주례가 차분한 목소리로 서약을 읽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함께할 것을 맹세합니다.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어떤 순간에도 곁을 지켜줄 것을 약속하며…"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례가 신랑을 바라보며 물었다.

"신랑 최도현 군, 당신은 김주연 양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곁을 지킬 것을 맹세합니까?"

신랑은 웃으며 단호히 대답했다. "네, 완전 맹세합니다."


이번에는 신부에게 다시 물었다.

"신부 김주연 양, 당신은 최도현 군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언제나 그의 곁에서 함께할 것을 맹세합니까?"


김주연은 설레는 눈빛으로 신랑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대답했다.

"네, 맹세합니다."


그 순간, 웨딩홀 안에는 조용한 감동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잠시 웨딩홀 안에 적막이 스쳐 지나갔고, 사회자가 외쳤다.


"자, 이제 신랑은 신부에게 어서 사랑의 키스를 해주세요!"

그 순간, 웨딩홀에 웃음과 박수가 터졌다. 신랑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키스해야 하는 순간을 잊고 있었다.


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신부를 바라보았고,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고 농담처럼 말했다.

"신랑님, 이 순간을 기다리셨잖아요. 어서요!”


하객들이 박수치며 환호하자, 최도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작게 웃으며 신부의 손을 잡고 조심스레 키스를 건넸다.

그 순간, 웨딩홀은 환호와 축복의 박수로 가득 찼다.



결혼식이 끝나고, 회사 동료들은 하나둘씩 로비로 나와 가볍게 대화를 나누었다.


"결혼식 참 좋았어요."

"신랑님, 엄청 긴장했나 봐요. 자리도 헷갈리고, 신부만 멍하니 보고 있고."

"그럴 만하죠. 오늘 같은 날, 평생 기억에 남을 거예요."

문성태 팀장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결혼에 대한 생각은 다 다를 수 있지만… 오늘만큼은 축하해야죠. 김 대리, 정말 행복하길 바랍니다."

홍보팀과 지역개발사업팀 직원들은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혼에 대한 고민도, 현실적인 문제도 잠시 내려두고, 사랑의 약속을 축복하는 순간.

그렇게, 김주연과 최도현의 결혼식은 따뜻한 웃음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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