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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열 Sep 29. 2023

그때 그시절14(연재)

14편 쌈치기

눈 오는 날은 산비탈 언덕에 오른다. 대나무를 쪼개서 앞쪽을 불로 살짝 구부려 올라타면 스키선수요. 요소 비료 푸대 깔고 앉아 두 발 반짝 들면 초보 스키다.



나무 다발 지게에 받혀놓고 산봉우리에 올라가 보자기에 싸 온 참외와 고구마 먹으면서 서해를 바라보고 소리 한번 지르면 등산이다.



5km가 넘는 등굣길에 실컷 놀다가 학교 종이 땡땡땡~~하면 책 보따리 둘러메고 죽어라 뛴다. 제시간에 들어오면 5km 단축 마라토너다.



8강 놀이는 마당 공터에 8개 칸을 그어 넣고 납작한 돌을 골라서 깨금발로 툭툭 밀어서 벗어 나지 않고 8간 전체를 돌고 오면 1점. 게이트볼과 비슷하다. 미니 골프도 있다. 구멍 4개를 멀찌감치 파고 중지와 엄지 사이에 유리구슬을 끼워 손꾸락 힘으로만 정 조준해 튕겨서 4개 구멍을 왕복하면 왕이 된다. 왕이 된 구슬로 맞추면 다 자기 것이다. 제수가 좋고 고수가 되면 한번에도 구멍에 집어넣을 수 있다. 홀인원이다. 이때 조금이라도 팔을 빼면 ‘말좆빼기’라고 해서 반칙이다. 이것을 상습적으로 하면 낙인찍혀 끼워 주질 않는다. 구슬치기도 골프처럼 예의도 지키고 규칙도 있다. 반칙도 하면 안 된다.



새금팔 놀이나 오징어놀이, 뜀박질하면서 그대로 멈추는 게임은 축구나 배구에서 슬로우 비디오나 비디오 판독하듯 움직이거나 눈이라도 깜빡, 숨이라도 크게 쉬면 탈락한다.



흔히 하던 숨바꼭질, 말뚝박기, 고무줄놀이는 변산반도 개구쟁이들한테는 시시한 게임이라 여기서는 제외했다.



그렇게 실컷 놀다 채석강 쪽에 노을이 지고 어둑어둑해 지면 자동 타임아웃이 된다.



군기치기, 딱지치기, 쌈치기가 있지만, 그중에서 제일 스릴있고 재미있는 게 쌈치기다. 동전을 쥐고 짤짤 소리 낸다고 해서 짤짤이라고도 한다. 잡는 쪽(선수 1명)의 주먹 속에 동전의 숫자를 3으로 나눠 남는 것을 맞추는 놀음이다. 남는 게 하나면 ‘아찌’, 두 개면 ‘두비’, 세 개면(나는 게 없으면) ‘쌈’이 된다. 찍는 쪽은 여러 명이 될 수 있다. 확률은 삼 분의 일이다. 찍은 돈만큼 가져간다. 못 찍으면 전부 내놔야 한다.



고수가 되면 도박처럼 돈이 호주머니에 수북하게 쌓인다. 그러다 제수 나쁘면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된다.



변산해수욕장 주위에 사는 애들은 세뱃돈도, 용돈도, 일해서 번돈도, 쎄비해 온 돈도 아닌 모래 위에서 건진 동전들이다. 한여름 해수욕장의 피서객들이 흘린 동전 들이다.



모래사장 위에 텐트를 치거나 야유회 놀이를 한 수많은 사람이 모래 위에 흘린 호주머니 속 동전이다. 꿈만 잘 꾸면 노다지도 캘 수 있다. 금반지나 손목시계도 주울 수 있다.



모래 속에 묻힌 잃어버린 귀금속은 금속탐지기로 찾아야 할 정도 어지간해선 찾을 수 없다.



60~70년대는 부안에서 변산해수욕장까지 비포장도로로 1시간 이상 걸렸다. 자가용도 없고 시내버스도 하루에 4번 다녔다.



지금은 국립공원으로 승격되고 교통도 편리하여 계절에 상관없이 관광객이 붐비지만, 그때는 여름이 지나면 개미 한 마리 없이 을씨년스럽게 쓰레기와 빈집만 남는다. 우리는 텅 빈 해수욕장에 9, 10월경 태풍이 불거나 파도가 밀려오는 날은 여지없이 모래밭에서 눈을 크게 뜨고 동전을 찾는다. 파도는 모래 속에 숨어있는 조약돌, 쇠붙이, 동전들만 남기고 모래만 바다로 데려간다. 한두 시간 돌다 보면 동전 수백 개는 주울 수 있다. 호주머니가 수북해진다.



그 시절 동전은 1원, 5원, 500환, 50원, 100원, 5종류다. 지금은 카드와 지폐를 많이 쓰지만, 그때 통용되는 것은 주로 동전이었다.



우리는 주운 동전으로 빈집에 들어가 쌈치기를 한다. 동전이 은행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모래 속에서 찾은 거라 녹이 슬어있지만 땄다 잃었다 몇 시간 하다 보면 녹도 벗겨지고 손바닥은 검게 된다. 때가 껴 짝짝 갈라진 손등에서 피가 보이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등굣길에 빈집에 들어가 잠깐만 쌈치기 한다는 것이 시간이 훌쩍 지나 등교 시간을 놓쳐버렸다. 지각했다고 혼날 게 뻔했다. 학교 가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우리는 중간치기라 한다. 선생님도 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확인할 방법이 없다. 농사일이 바쁘면 종종 결석하는 학생이 많았다.



쌈치기 경지에 올라간 ‘전재인’이라는 친구가 있다.



짤짤 소리만 들어도 상대편 손에 쥔 동전 숫자를 대충 알아내고 자신이 잡는 편이 되면 주먹에 쥔 동전의 숫자를 짤짤 몇 번에 정확히 알아내는 친구이다. 그 친구는 웬만해선 끼워 주지 않았다.



반백 년이 지났어도 우리 변산 초딩 동창 모임은 1년에 두 번 모인다. 상습적으로 여자들 고무줄을 면도칼로 잘라버리고 도망가는 옹고골 영배한테는 아무 말 안 하고 모임 때만 되면 가스나들이 나를 놀려 먹는다.



그때 당했던 것 복수하나? “경녀리 꼬추는 요만하다” 엄지도 아닌 검지 손 반만 잡고~~~



아이고 쪽팔려 그때 팬티라도 입고 물놀이 할 껄.



복수 할라면 영배한테도 해라 ~~







출처 : 부안독립신문(https://www.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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