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경열 Sep 29. 2023

그때 그 시절15(연재)

15편 영양실쪼(1)

지금은 대한민국 비상시국이다. 아니 세계도 최악의 위기다.


우리 어릴 적에도 코로나와 비슷한 전염병이 돌았다. 이름도 비슷하다. ‘코로나’ 아닌, ‘콜레라’다. 이 전염병은 오염된 물과 채소 그리고 주위에 감염된 어패류에서 옮기는 병이다. 대부분 시골에서는 수돗물 아닌 우물물을 먹었고 채소는 농약 없이 거름만 주어 키웠다. 콜레라는 손발을 깨끗이 씻고, 생것이나 날것은 먹지 않고 물은 끓여 먹으면 없어지는 전염병이다.


학교에서는 봄과 가을 연례행사로 채변봉투에 똥을 받아오라 한다. 거의 모든 학생은 비위생적인 음식으로 회충과 요충 십이지장충이 뱃속에 한 주먹씩 들어 있다. 채변 검사는 국가에서 무료로 해 준다. 검사결과는 보나 마나 거의 모두가 회충약을 탔다. 냄새 풍기는 푸세식 똥통에서 성냥개비로 비닐 봉투에 퍼 담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래서 한번은 우리집 강아지 똥을 넣어 간 적이 있다. 결과 검사가 나오는 날 다른 애들은 회충약을 타는 데 나에게만 약을 안 줬다.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는 기생충이 나왔다고 부안 보건소에서 특수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겁이 덜컹 나서 개똥을 넣었다고 자수했다. 그날도 선생님에게 불이 나도록 손바닥을 맞았다.


당시에는 얼굴엔 버짐, 머리에는 도장밥, 몸에는 부스럼 등 피부병이 많았다. 울 아버지 “비따민 갤핍인갑따”면서 시금치 한 다발 밭에서 뜯어다가 무쳐 먹고, 삶아 먹고, 국 끓여 먹고, 먹기 싫을 때까지 먹인다. 그러고 나서 창포 베어다 푹 삶은 물에 목욕하고 바위틈에 나오는 약수를 정종병에 받아서 배 터지게 먹이신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피부 질환이 싹~ 없어진다.


침을 흘리거나, 열이 펄펄 나고, 노랑 코가 들쑥날쑥하면 여지없이 이마를 만져 보시곤 “담백찔 갤핍인갑따”하고는 논에 가셔서 삽질 몇 번에 미꾸라지 한 바깨스 잡아 와 산초와 푹 삶아서 몇 그릇 먹이신다. 그러면 입과 코가 깨끗해진다.


냉장고도 없어 쉰 음식과 부패한 음식 먹는 것은 보통이다. 그래서 식중독과 설사는 달고 다녔다. 교실에서 똥 안 지린 친구가 드물었다. 늦가을 약성이 많을 때 뜯어다 처마 밑에 걸어 둔 뜸쑥 한 다발을 약 단지에 집어넣고 숯불에 푹 삶아 한 사발 마시면 배탈과 설사가 언제 그랬냐는 듯 낫는다. 근데 좋은 약은 입에 쓰다. 소태나무처럼 쓰디쓴 쑥물을 눈을 찔끔찔끔하며 먹는다. 거기에 사카리 두서너 개 넣고 저어 먹으면 달짝지근한 쑥 향기가 난다. 쑥이 없을 땐 까스활명수라는 소화제가 있지만, 마시기는 좋은데 나에겐 아무 효과 없었다.


시골길은 돌뿌리가 어찌나 많은지 조금이라도 한눈팔면 넘어지기 일쑤다. 물팍이 깨져 피가 철철 나더라도 피를 닦아내고 아까징기 바른 후 안티프라민 바르면 외상은 끝이다. 먹는 약은 까스활명수, 바르는 약은 아까징기와 안티프라민만 있던 시절이다. 배 아플 때 아까징기나 안티프라민을 바르는 오용도 있었지만 신통하게도 기분은 상쾌해지고 배 아픈 것도 시원하게 낫는다. 의학계에서 최근에서 발표한 “플라시보 효과(심리적 요인에 의해 병세가 호전되는 현상)”를 우리는 어렸을 때 이미 경험한 것이다.


귀신같은 헛것이 보이거나, 비실비실하여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거나, 코피가 터졌다 하면 울 아버지 한의사도 아니시면서 “앵양 실쪼 잉갑따” 진단 내리시고 개구리 몽땅 잡아다 뒷다리만 잘라서 찹쌀, 창출, 산도라지 넣어 푹 고아 먹인다. 그러면 눈에는 총기가 생기고 아침에 벌떡 벌떡 일어난다. 우리 동네 서낭당 돌아가는 길모퉁이는 상여 저장하는 창고가 있었는데 거기서 도깨비와 귀신을 본 마을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얼마 전까지도 있었다. 그러나 영양이 풍부한 최근에는 거기서 귀신 봤다는 사람이 없다. 울 아버지의 “앵양실쪼” 걸리면 귀신도 보인다는 진단이 정확하다.


창출과 산도라지는 한약재로 쓰이는데 우리 동네 산에 가면 널려 있었다. 개구리도 들에 나가면 널려 있어 새끼줄에 줄줄이 엮어 팔고, 닭 뼈 버린 쓰레기장 돌멩이 떠들면 지네들도 버글버글 했다. 요것도 실에 꿰어 팔면 용돈은 생긴다.




작가의 이전글 그때 그시절14(연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