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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열 Sep 30. 2023

그때 그 시절 18 (연재)

18편 득실이(2)

똑같이 말썽을 많이 저질렀어도 상식이를 먼저 더 많이 혼을 냈다. 아버님이 안 계셔서 그러는지 몰랐다. 전쟁이 무엇인지 아버님이 왜 없는지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상식이는 엄니를 많이 그리워했다. 한번 집을 나가면 잊어먹을 만하면 집을 들러 아들을 보고 간다. 그래도 엄니는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 먹을 것을 한 보따리 갖고 왔다. 잔칫집에서 얻어온 음식인지 제사 후 꼬시레 음식인지 모르지만 맛있게 먹었다.


상식이 별명은 득실이다. 몸에 이가 득실거린다고 우리끼리 그렇게 불렀다. 초등 때는 수시로 때 검사를 했다. 흙밭에서 뒹굴고 놀다가 며칠만 안 씻으면 온몸에 때가 시꺼멓게 낀다. 선생님은 때가 많은 애들은 웃통을 벗으라 하고 양팔을 펄럭이며 까마귀처럼 ‘까악 까악’ 하면서 교실을 서너 바퀴 돌린다. 웃음이 절로 나오고 창피했다. 집에 돌아와 엄니한테 책 보따리를 휙 ~던지면서 소리를 지른다. “엄니! 오늘 까마귀가 돼서 가시네들한테 웃음거리 됐어요”


그때부터 때 검사 전날 엄니는 아들이 까마귀 될까 봐 아궁이에 장작불을 붙여 가마솥에 물을 끓여 큰 다라에 퍼 담으신다. 거기에 몸을 담가 때를 불린 다음 조약돌이나 몽돌을 주어다가 짝짝 갈라진 손등부터 피가 나올 때까지 빡빡 문질러 주셨다. 까마귀 겨드랑이와 등에는 누룽지가 더덕더덕 붙어있다. 비누도 귀했다. 양잿물과 쌀겨를 버무린 사제 비누를 썼다. 때수건도 없다. 밭에서 키운 자연산 수세미 속을 꺼내어 말린 다음 때수건으로 사용했다. 구석구석 문지르면 까마귀 몸에서 검정 국수가 되어 떨어진다. 엄니가 아끼시던 구루무 한 덤베기 찍어 발라 주면 까마귀 하늘로 날아갈 듯 상쾌하고 시원했다. 그렇게 까마귀에서 벗어날 때도 있지만 엄니가 안 계시는 독실이는 가을부터 다음 해 봄까지는 까마귀였다.


득실이 가 자는 방은 한겨울에는 물이 얼어있을 정도로 난방이 되지 않았다. 우리 집 헛간은 소를 두 마리나 키웠다. 가마솥에 여물을 끓여 뜨끈뜨끈한 구들방이었다. 저녁 간식으로 아궁이에 고구마도 묻어 놨다. 긴 겨울밤 친구들이 모여 놀기 딱 좋은 장소였다. 나, 종회, 태금, 득실이 가 모여 늦은 밤까지 노는 곳이었다. 그러다 자기 전에는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전부 웃통을 벗고 이를 잡아야 했다.


이가 옷 속 구석구석에 숨어있다. 득실이 가 보리만 한 튼튼한 왕 이를 잡아서 싸움을 시키자고 한다. 우리는 자기 몸에서 제일 큰 이를 한 마리 잡아 하얀 백지 위에 놓고 쌈을 시킨다. 뒤엉켜 있어 생긴 것이 비슷하고 백넘버는 없어도 우리는 내 편을 정확히 알고 있다. 물론 득실이 가 승자다. 쌈이 끝나면 손톱으로 ‘톡’하고 눌러 죽인다. 하얀 백지 위에 피가 튀긴다. 그런 다음 석카리는 호롱불에 ‘타닥타닥’ 태워 죽인다. 그렇게 매일 밤 석카리까지 소탕해도 친구들끼리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면 어디서 생겨났는지 또 근질근질하다. 생명력도 강하고 기어 다니는 속도도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다. 그래서 울 엄니는 될 수 있으면 이가 옮긴다고 득실이 와 잠자리를 하지 말라고 하셨다.


초등 때까지 호롱불을 쓰다가 중학생이 될 즈음 74년경 변산반도에 전기가 들어왔다. 촌구석까지 전기가 들어오면서 변산반도도 변해 가고 있었다. 전국적으로 새마을 운동이 벌어졌다. 초가집도 없애고 수돗물도 들어와 목욕도 수시로 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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