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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열 Oct 01. 2023

그때 그 시절 20(마지막 회)

20편 득실이(3)

서울에서 내려온 득실이(상식이)는 이모한테 그동안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농사일보다 장래를 위해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설명하니 이모님은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읍내 제일극장 옆 형제 목공실에서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는 학교 가는 길목이라서 친구가 일하는 목공실을 수시로 들렸다. 항상 망치 소리 박자에 맞춰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를 들을 수 있었다.


상식이한테 담배도 배웠다. 제일극장 뒷골목 장미가 피어있는 화단 앞이 우리 만남의 장소였다. 상식이는 월급을 받아 녹음기와 기타를 사서 배우고 있었다. 꿈이 가수였고 제법 노래도 잘했다.


노래 가사에는 사랑과 미움, 슬픔과 이별이 있었다.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가 유행했었다. 노래를 부르면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아버지는 어떤 분이었는지? 지금까지 키워준 이모를 왜 원망해야 하는지? 정신 장애인 엄니를 어떻게 소통하고 이해해야 하는지? 동생 길수는 살아 있는지? 첫사랑 김말자는 잘 있는지? 전쟁은 끝났는데 왜 세상이 각박하고 어려운지?


10월 26일 라디오에서는 박정희 대통령 서거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담배 한 대를 푸~ 하면서 죽으면 어떻게 될까? 지옥과 천당이 있을까? 상식이한테서 그런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교회나 절에 가면 알려 줄지 모른다고 대답해 줬다. 그러면서 죽는 연습을 해 봤단다. 읍내 약국을 다 돌아다니면서 수면제를 사몇 봉지를 털어 넣었는데 죽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푸념을 한다. 농담처럼 들렸고 또 내가 어떤 위로나 충고도 할 처지가 안 됐다.


나도 어느덧 고3이 돼 있었다. 대학 시험 준비도 해야 해서 한동안 연락을 못 하고 지냈다. 대학 예비고사를 끝내고 오랜만에 목공실에 들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항상 그 위치에서 녹음기를 크게 틀어 놓고 콧노래를 부르며 망치질과 대패질을 하고 있을 상식이가 보이지 않았다. 주인어른께 물어봤다.


“상식이 어디 갔어요?”, “갔어 일주일 전에”


어디를 갔단 말인가 혹시 대항리 이모 집에 간 줄 알고 다시 물어봤다.


“언제 갔어요?”, “아따 이 사람이 말귀도 못 알아듣나? 죽었단 말이야!”


또 묻고 또 물었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어디선가 튀어나오면서 “갱열이 왔냐? 담배 한 대 피우러 가자” 득실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장미가 피어있는 뒷골목 화단에도 가봤다. 거기에도 담배꽁초만 널려있고 상식이는 없었다. 믿어지지 않아 다시 이모 집을 들렀다.


몇 장의 한 많은 유서를 썼지만 나는 읽을 수 없었다. 그중에 나한테 쓴 유서 한 장을 전해 주었다. 죽음을 작정하고 또박또박 쓴 글이었다. 헛간 방에 들렸다. 어디선가 “갱열이 왔냐?” 상식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달아 떨어진 옷도 벽에 그대로 걸려있었다. 신탄진 노란 담뱃갑에 피다 만 담배 서너 개가 남아있었다. 줄담배로 모조리 피우면서 상식이 생각을 했다. 담배는 상식이한테 배웠다. 


머리가 핑 돌았다. 구석에는 나무 상자가 있었다. 화장한 유골이었다. 목공실에서 손수 짠 나무 상자라고 했다. 유골은 어릴 적 놀던 바닷가에 뿌려 달라고 했다. 파도가 거세고 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구석구석 상식이와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유골이 바람에 날려 하얀 파도와 함께 멀리멀리 흐트러지고 있었다.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다.


유서를 읽어봤다.


“그동안 친구가 돼줘서 고마웠다. 그리고 영원한 우정을 지키지 못하고 먼저 가서 미안하다. 언젠가 너랑 막걸리 마시고 잔디밭에서 잠들었을 때 꿈속에서 천당을 봤다. 그때 나는 뭉게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고 싶다는 결심을 했단다. 너는 항상 밝고 웃음을 줬지만, 그동안 나는 부모가 없다는 죄로 서러워 남몰래 많이 울었단다. 이제 마음을 비우니 편하다. 마을 구석구석을 마지막으로 너랑 뛰어놀고 싶다. 법무사에서 호적을 만들었다. 성도 모르는 동생 윤길수도 나와 같은 가족에 올려놨다. 길수는 살아 있으리라 믿는다. 만나거든 호적 등본을 꼭 좀 챙겨 줘라. 내 꿈은 행복한 가족을 갖고 싶었고 가수가 되는 거였는데 끝내 못 이루고 가는구나. 기타와 악보 남겨 놓는다. 나 대신 꿈을 이뤄 담 세상에서 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상식이 녹음기를 틀어봤다. 이미자 가수의 ‘빙점(氷点)’이라는 노래였다.


‘이 몸이 떠나거든 아주 가거든


쌓이고 쌓인 미움 버려주세요


못다 핀 꽃망울에 아쉬움 두고


서럽게 져야 하는 차거운 빙점


눈물도 얼어붙은 차거운 빙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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