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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열 Oct 03. 2023

바다와 여인 1 (연재)

1. 해창다리에서 맺은 인연

나는 변산면 대항리에서 태어나고 바다에서 자랐다. 외갓집도 바닷가였다. 옛날에 우리 외할머니는 점괘를 알고 계셔서 동네 사람 점도 봐주셨다. 할머니 점괘에 나는 물가를 조심하고 서쪽을 가지 말라 하셨다. 그러나 할머니의 점괘와는 반대로 바다를 좋아했고 물가에서 자라면서 바다에 대한 꿈을 키웠다. 멀리 채석강 쪽에 노을이 지고 붉은 태양이 위도를 등지고 수평선 너머로 지는 낙조를 보면 한 폭의 그림이었다. 나는 그 너머 세계에는 무엇이 있을까? 항상 궁금해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학교도 바닷 가고 직장도 바닷 가고 지금도 바다에서 일하고 있다. 한때는 태평양과 대서양 등 5대 양 6대 주를 누비는 외항선원인 마도로스였다.


나는 중학교까지 변산면에서 다녔고 고등학교는 부안 읍내로 통학을 했다. 유학을 간 셈이다. 대부분 친구는 변산면에 있는 사립고등학교(지금은 폐교한 부안실업고등학교, 일명 연초고등학교)를 다녔다. 고집이 세서 부모님을 설득한 친구들만 부안읍으로 다녔다. 읍으로 가기 위해 비포장도로를 한 시간 이상 달리는 완행버스를 탔다. 버스도 안전여객과 전북여객 두 대가 번갈아 다녔다. 부안읍을 출발해 동진면, 행안면, 하서면, 변산면까지 비포장으로 집에 도착하면 녹초가 됐다. 버스를 한번 놓치면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기에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비집고 타야 한다. 남녀 학생 구분 없이 콩나물시루처럼 빽빽이 학생들을 태우고 출발해서 하서면 정도 오면 숨을 좀 쉴 수 있었다. 해창다리를 건널 때쯤에서야 비로소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해창다리는 일제 때 만들어졌다. 당시 콘크리트 타설 작업 때 군막동에 사는 어느 아가씨가 공사 중 다리를 건너다 굳지 않은 깊은 콘크리트 기둥 속에 빠졌다. 꺼내려면 거푸집을 철거하고 콘크리트 타설을 다시 해야 했다. 막대한 비용과 공사 기간이 길어질 수 있어 신고가 들어왔어도 묵인하고 매립해 버렸다는 확인 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전설이 있었다. 아니 큰 공사는 일부러 미신을 쫓기 위해 산 사람을 집어넣는다는 설도 돌았다. 그래선지 아가씨 원한의 울음소리가 하루에 한 번 ‘쿵’ 하고 울렸고 그것을 하늘이 공노 했다고 했다. 정말로 많은 사람이 다리에서 나오는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천인공노할 일본 놈의 만행이 해창다리 준공 역사에도 숨어있다. 지금은 4차선으로 멋진 다리 하나가 옆에 건설돼 있다.


군막동은 지금 부안댐 부근으로 해창다리 공사하는 인부들 혹은 군인들 막사가 설치됐다고 해서 군막 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마을 유례가 있는데 정확한 것은 찾을 수 없다.

해창은 새만금 공사 이전에는 어선들도 많이 정박해 있는 작은 포구였다. 내변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라서 조개와 물고기들이 많았다. 생각을 더듬어 타임머신을 타고 45년 전으로 가본다.


백련리를 지나고 비득치를 지나~~ 막 해창다리를 건너는 순간, 갑자기 버스 기사 아저씨가 차를 멈추고 해창다리 밑을 가리키고 있었다.

거기에는 조개를 캐던 앳된 소녀 3명이 물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이들은 소녀 한 명이 물에 빠졌는데 그 소녀를 구하다 연이어 물속에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 광경을 보니 옛 어른들 말이 문득 생각이 났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려다 모두 죽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의 점괘도 어기고 항상 물가에서 놀았고 그 덕에 수영도 잘하고 잠수도 잘했다. 물도 두렵거나 무서워하지 않았다. 조그만 웅덩이는 나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른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나는 교복을 벗어 버리고 물에 뛰어들어가 소녀 3명을 모두 건져 올렸다.


3명 모두 물을 많이 먹었지만, 2명은 의식이 있었고 1명은 의식이 없어 보였다. 의식 없는 소녀를 하얀 모래 위에 눕혔는데 물을 얼마나 마셨는지 배가 불룩하여 기절한 개구리 같았다. 그때 어디선가 “학생 인공호흡이라도 시켜야지 어떻게 해~~” 시골 사람들은 말만 들어봤지 인공호흡을 할 줄 몰랐다. 나도 한숨을 쉬면서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그 순간 문뜩 교련시간에 건성건성 실습했던 인공호흡법이 떠올랐다. 무엇부터 먼저 시작해야 하는지 잘 몰랐지만 우선 배에 물부터 빼야겠다는 생각에 아래턱을 쥐고 코를 막고 옆으로 눕히고 입을 벌렸다. 그 순간 배에 들어있던 물이 기도를 통해서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오바이트를 시키고 난 뒤 바르게 눕혔다. 하얀 블라우스는 물에 젖어 속살이 보였고 가슴엔 빨간 앵두 두 개가 봉긋했다. 시골 소녀치고 피부가 하얗다고 느꼈다. 그렇게 멍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어른이 야단을 쳤다. “빨리 서둘러라, 생명이 위독하다!” 용기를 내 인공호흡을 시도했다. 입을 벌려보니 옥니가 귀엽게 삐져나왔다. 좀 묘한 기분은 들었지만 입을 벌려 숨을 크게 한번 쉬고서는 소녀 입속에 숨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몇 번을 불어넣고 가슴을 누르고 반복하던 어느 순간 소녀가 크게 숨을 내뱉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나도 생명을 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소녀는 창피한지 가슴을 여미고 잠에서 막 깨어난 어린애처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두리번거리다 나를 바라봤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희미한 눈을 피해 버린다. 다리에 힘이 없어선지 일어서지 못했다. 일으켜 세워 등에 업은 후 하얀 모래사장을 건너 해창마을 어귀에 데려다 놓고 마을 어른들에게 맡기고 나서야 안전여객 버스에 올랐다. 그렇게 짧은 순간이었지만 하얀 피부와 옥니가 난 16세 소녀와 그렇게 헤어졌다.

그렇게 고교 시절 추억의 통학버스를 뒤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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