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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열 Nov 05. 2023

BANGKOK (연재 12)

총각딱지를 뗄 수 있을까?

출항하자마자 푸른 하늘에 씨커먼 구름이 몰려왔다. 스콜이 밀려오고 있었다. 서서히 어둠이 깔리더니 폭포 같은 소낙비가 쏟아지고 있다. 인도 갠지스 강에서 묻어온 시체 탄 먼지가 세차하듯 말끔히 청소를 해줬다. 싸우나를 갔다 와 때를 말끔히 벗고 온 것처럼 시원했다. 열대지방을 여행하면서 스콜은 경험했지만 넓은 바다에서 마주치는 것은 처음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구름 한 점 없는 뜨거운 열대의 태양으로 눈이 부실정도 맑은 날이었지만 삽시간에 검은 이불이 덮친 것이다. 선박 길이가 250m다. 가시거리는 100m도 안된다. 선박 앞부분(선수)은 보이지 않고 반만 보인다. 마치 반토박 선박이 항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선박은 가시거리를 확보하지 못하면 제일위험하다. 선박은 태풍에 의해서 중심을 잃어 전복되는 사고가 나지만  전방 시야를 확보하지 못하는 짙은 안갯속이나 우중속에서는 충돌사고가 일어난다. 자동차가 짙은 안갯속에서 질주하는 것과 같다. 야간항해는 빛을 보고 항해를 한다. 하늘에 별도 보이고 등대도 보인다. 주변을 항해하는 선박들을 쉽게 식별할 수 있다. 그러나 빛은 안개나 빗 속을 투과 못한다. 망원경도 소용없다. 보이는 것 오직 장대 같은 빗줄기다. 우중속에서는 레이다와 GPS 의존할 수박에 없다. 계속해서 기적을 울리면서 타선박에게 신호를 준다.  선박의 속력은 최대한 줄여서 항해한다. 1시간여 동안 퍼붓는 빗줄기는  샤워기 조절발브 잠그듯 뚝 끊기더니 말끔히 하늘이 개었다. 하늘의 먹구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 젔다. 스콜은 갠지스강에서 시체 태운 연기와 먼지로 오염된 선박을 깨끗이 세척해 줬다. 열대의 뜨거운 열기로 달구어진 철갑판이나 거주실(deck house) 실 외판이 시원하게 냉각이 되었다. 

스콜이 지나간 후 선박은 다시 망망대해로 진입했다. 푸른 하늘과 검푸른 바다 그리고 수평선만 보인다. 갈매기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망원경까지 동원하여 들여다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레이다로  가시거리로 확인 못하는 반경 50km까지 확대해 봤다. 

배를 운항할 수 있는 면허를 해기사(海技士) )라고 하는데 항해사와 기관사 두 종류가 있다. 항해사는 화물선일 경우 선박의 항해와 화물을 담당한다. 기관사는 선박을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기계와 전기를 담당한다. 최근에는 자동화와 친환경으로 선박으로 선진화되면서 기관사의 업무가 가중되었다.

     배를 운항하는 선박 당직은 주. 야 3교대로 이루어진다. 원양을 항해하는 선박은 톤수와 관계없이 22명이 법정 승조원이다. 항해 당직은 2인 1조이다. 브리지 (조타실)에는 항해사와 조타수(STEERSMAN) 2명, 기관실에도 기관사와 조기수(OILER) 2명이 당직에 임한다. 당직이 없는 선장, 기관장, 갑판장, 조리원은 각자 임무가 따로 있다. 위성이 활성화되지 않은 1980년대에는 모스신호를 송수신할 수 있는 통신장이 따로 있었다. 최근에는 자동차 네비와 비슷한 GPS와 ECDIS(전자해도표시장치)가 설치되어 있고 선박에서 위성장치를 통하여 인터넷이 되므로 통신장이라는 직종이 사라지고 대학의 통신학과도 사라졌다. 항해사가 아니더라도 내비게이션만 볼 줄 알면 세계 어디든지 찾아갈 수 있는 시대에 도래했다. 항해사와 기관사를 통합한 운항사로 선박을 운항하는 제도가 추진이 되어 있어 미래에는 선장이라는 직종이 사라질지 모른다. 


주. 야로 벌써 5일째 항해를 하였다. 제한된 공간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시간도 잘 간다. 선내에는 간단한 문화와 취미활동은 할 수 있으나 육상과는 비교할 수 없다. 제일 힘든 부분이 사회와 격리되어 생활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애인과  떨어져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다. 길게는 몇 개월씩 떨어져 있어야 한다. 스님도 신부님도 아닌데 고행의 연속이다. 남자의 생리적 욕구도 참아야 한다. 기껏해야 야동 테이프를 암거래하듯 취득하여 숨죽이면서 돌려 보면서 손오공을 빌려 자기 위로하는 수밖에 없다. 활기 왕성한 젊은 남자들이 할 짓은 못된다. 남자들의 성욕 앞에서는 지식도 지위도 성인군자도 소용없다. 여자의 향기가 그립다.


육지가 가까워 젔는지 열대 숲에서 꽃향기와 파인애플 향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온다. 방콕항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인도 갠지스강은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곳이라면 방콕의 짜오프라야강은 남자와 여자가 공존하는 곳이다. 동양의 베니스이며 방콕의 젖줄이다. 아름다운 여성과 수상보트를 타고 강을 거슬러 여행했다며 방콕항을 자주 왕래했던 선배 항해사는 방콕의 행복한 경험담을 들려준다. 방콕은 관광의 도시, 환락과 유흥의 도시, 여자의 도시, 섹스의 도시, 게이의 도시라 한다. 감옥과 같은 남자들만의 세계에서 탈출한 고삐 풀린 망아지다. 억누른 성욕과 젊은 혈기는 발정 난 짐승과 같다. 어디든 아름다운 여자가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나는 23 세 대학을 막 졸업한 세내기 기관사다. 젊고 풋풋한 총각이다.


"올스테이션 스텐바이 올스테이션스텐바이" 방콕항 입구에 도착했다는 선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정박지(Anchorage)에 잠깐 정지한 후 도선사(Pilot)가 승선하여 우리 배를 좁은 수로를 따라 인도하여 안전하게 부두에 접안시키는 업무를 한다. 예인선(Tug boat) 두척이 우리 배에 따라붙어 도선사를 돕는다. 짜오프라야강을 1시간 정도 거슬러 올라간다. 강주 위로 아름다운 수상가옥과 열대의 식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미모의 방콕 여성에게 3등 기관사의 총각 딱지를 띨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까? 대리점에서 왕링링의 편지와 전보가 도착했을까? 방콕 정박일은 일주일이다. 우천으로 작업이 지연되면 그 이상도 될 수 있다. 꿈에 부풀어있다.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기 시작한다.

                                                                                                                         <1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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