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나의 행복한 순간에 대해 아주 사소하게 말하자면

은은한 로즈향, 조 모델로 그리고 고양이

by Mira

어떤 분이 댓글에 "자기 기준의 행복"이라는 문장을 남긴 걸 보고 생각했다.


내 기준의 행복은 뭘까?


1. 나만의 아침

상쾌하게 아침 샤워를 하고 바르는 로즈향 스킨과 바디로션을 바르는 순간이 좋다.


가성비를 추구하는 소비를 지향하지만, 산타마리아 노벨라의 로즈향 스킨과 바디로션은 포기할 수가 없다.


그래도 백화점에서 정가에 사는 건 아니고, 당근으로 꽤 저렴하게 산다. 특히 선물 시즌 직후에 많이 올라와서 3~4개 사면 1년은 충분히 쓰더라.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오롯이 나만을 위한 아침 의식이다.


2. 오전 집중시간

뜨거운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면서 컴퓨터를 켠다.

씁쓰름한 커피맛이 혀끝을 툭 건드리고 목으로 넘어갈 때는 벨벳처럼 부드럽다. 커피는 향과 질감의 매력으로 마시는 게 아닐까.


커피 볶는 고소한 냄새와 시럽의 달콤한 향이 어우러져 퍼지는 사내 카페테리아에서 산 커피는 샷 추가해서 990원.


조 모렐로의 압도적이고 힘찬 드럼 연주를 들으면서 업무용 다이어리와 개인 다이어리를 연다.


부드럽게 써지면서도 종이를 누르는 힘이 좋은 볼펜으로 하루 일정을 쓴다. 동그란 심이 종이에 꾹꾹 눌러지는 섬세한 필기감을 좋아한다.


그날의 주요 업무와 공부할 주제에 대해 쓰다 보면 머리가 자연스럽게 워킹모드로 켜진다.

둥둥 두둥하는 드럼 연주와 함께.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가상자산 계좌 포트폴리오를 챗에게 보내고 회사에 와서 확인한다. 챗이 상당히 긴 피드백을 주었다. 그 내용을 노트에 한번 써 보는데, 모르는 단어가 반이네.


이것이 오늘 공부의 주제가 된다.


나는 오전에 집중이 잘 되고 오후가 될수록 방전되는 바이오리듬을 가져서, 이 시간에는 누가 말 거는 것도 싫다.


이 루틴으로 10년을 보냈다.

1년에 두 권씩 쌓이는 다이어리를 보면 기분이 묘하다.


3. 점심시간

5,000원 하는 구내식당을 주고 이용하는데, 이때 사진이나 영상을 찍고 인스타 릴스에 올린다.

1분 미만의 릴스 영상 만드는 거 까먹지 않으려는 목적이다. 또 퇴사 이후를 위한 추억 저장용이기도 하고 유튜브 숏츠 영상으로도 올린다.


지금은 영상 콘텐츠 작업 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을 여력이 없지만, 끈을 놓고 싶지 않아서 습관처럼 해 보게 된다.


내 안에서 콘텐츠화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는 게 즐겁다.


4. 퇴근 후 맥주 한잔

하루를 고되게 살 수록 씁쓰름하고 차가운 맥주 맛은 기가 막히게 좋다. 하루를 지탱한 긴장감이 풀린다.


온전히 혼자 있으면서,

혼자를 만끽하는.


유튜브를 보다가 투자 관련해서 들어 볼만 한 영상은 저장해 놓고 주말에 확인한다. 그중에 관심 종목이 생기면 바로 자동매수를 걸어 놓고 지켜본다.

내가 결정한 리듬대로,

매수 금액을 조금씩 늘린다.


10년 전부터 저녁 약속을 일체 잡지 않는다.

나는 '저녁 먹지 않는 여자'로 통한다.

술자리의 김 빠지는 대화나 술기운의 리액션이 재미없다. 그 시간에 내 공간에 푹 파 묻혀서 음악 듣고 영화 보고 고양이 엉덩이를 토담토담하고 하고 싶다.


저녁 시간을 자주 갖는다고 해서

우정이 깊어지는 것도 아니더라.

5. 엄마에게 돈 쓸 때

엄마가 편찮으셔서 병원 가실 때, 내가 돈 걱정 하지 않고 결제를 할 때가 정말 좋다. 엄마가 드시고 싶은 음식 가격을 보지 않고 주문할 수 있을 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결혼 한 형제들이 너무 무심하다 싶을 때는

"왜 나만?"

억울한 감정도 생기더라.

그래서

나는 외동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 뭐.


이 나이에 부모님이 필요한 일에 돈 걱정부터 앞선다면 정말 비참했을 거 같다.


나처럼 산수도 못하는 사람을 투자의 길로 가게 해 준 그때의 결핍과 불안이 고맙다.


의욕 없이 억지로 삶을 이어가는 괴로움

준비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뭘 해도 행복하지 않고

아무 의욕도 없는 상태.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헤맸는지.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은 두 가지.

고마움을 느끼는 마음과

내가 결정하고 노력한 끝에 오는 조용한 결실.


누리고 사는 게 너무 당연한 사람, 두려움도 망설임도 포기하지 않은 경험조차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은 진심으로 자기 자신과 평화롭게 지내지 못하더라.


남들에게는 별거 아니지만 내가 일상에서 만드는 의미는 나의 내면을 풍부하게 한다.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는 것처럼 자기만의 시간에 흠뻑 빠지는 시간.


당신에게는 그런 순간이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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