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L228. 사노 요코

그녀의 재규어

by Mira


1.사노요코를 생각한다.


사노 요코는 시한부를 통보받고 나서 재규어를 샀다.

그동안 너무 오래살면 어쩌나 싶어서

아껴둔 비상금의 빗장을 풀었다.


하지만 곧 건강이 악화되어 운전을 하지 못하고

차량 관리도 하지 못해

결국,

보네트 위에는 새똥이 가득했다고 회상하면서

킬킬 웃던 그녀의 문장.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40대였다.

이 멋지고 괴짜스러우면서도

무섭고 단호하게 독립적인 할머니의 매력에 빠졌다.



2.그로부터 10년 후,


퇴직을 하고 나니

그 재규어를 사던 그녀의 심정을 다시 헤아리게 된다.

나에게 퇴직은 30년 동안 고군분투했던,

그러나 내세울 것 없이 버티기만한 시절의 엔딩이다.


인생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기분 이렇게 씁쓰름한데,

삶의 엔딩을 마주한다면,

어떤 기분이 드는 걸까?


농담처럼 끝나버리는 생은 얼마나 많은 눈물과 인내를 요구하는 지.

어이없는 랜덤법칙이

삶의 디포트 값이라는 걸

알고 나니,

모든 게 덧없다.


덧없이 아름답고

덧없이 짠하다.



3.그녀의 재규어



사노 요코에게 재규어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붙들어주는

조용한 위안이었을 것이다.

그 허망함까지 포함해서

그녀는 그것을 사랑했다.


그리고 나는

54세의 겨울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조금씩 다시 배우는 중이다.

이 나이에도 '새로운 것'이 있을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거대한 목표나

거창한 계획이 아니다.


지금의 나를 정확히 지탱해주는 리듬,

감각을 잃지 않게 하는 일상의 리츄얼,

내 취향을 양보하지 않는 태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


중요한 건 생이

“얼마나 남았는지”가 아니라

남아 있는 시간을

어떤 온도로 살아낼 것인지다.


언젠가, 나중에, 이따가

그 말들은 이제 내 삶에서 효력이 없다.


지금의 마음,

지금의 감각,

지금의 나.



4.허공을 향한 질주


덧이 없어서 더욱 애잔한 생을 무엇으로 붙들어 매고 버틸 수 있을까?

그녀에게 재규어는 위로가 되었을까?

아니면 허망한 기분만 더 들었을까?


분명한 사실은

새들이 그 차 위에서 기분 좋게 똥을 쌌다는 거다.

이제 나도

'언제가'

라든가

'나중에'라는 시간이 없다.


좋은 옷을 나중에 살 일도 없고

좋은 차를 '언제가' 살 일도 없다.

오늘 생각나면 오늘 하는 거다.

오늘 먹고 싶은 것

오늘 갖고 싶은 것


오지도 않을 '나중에'를 위해

아껴야 할 것은 없다.


조건 :

머니트리가 잘 자라고 있다면.

요코에게는 연금이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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