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없는 수용은 환상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좋은 말이다.
위로가 되기도 하고.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나는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식의
수사적 표현을 싫어한다.
너무 뻔한 말들로
삶이 요구하는 깊은 질문을
외면한 체
귀에 달콤하고
듣기에 편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에 대해
너그러워 지자는 뜻에서는 동의한다.
태어난 아기는
똥 싸고 잘 먹고 잘 자기만 해도
이쁘지만
유아기만 지나도 부모는
아이가 세상에 나갈 준비를 도와준다.
한글도 익혀야 하고
숫자도 셀 줄 알아야 하고
운동 신경도 발달해야 하고
사회성도 있어야 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태어나자마자 걷고 뛰는
포유류에게 사냥 기술을 가르치는 것처럼
인간의 부모는 아이에게
30년 가까운 시간을 내어준다.
어린 코끼리가
제 코를 가누지 못할 정도로 미숙한 상태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달라고 하며
돌아다니면
금방 먹잇감이 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조건 없는 수용에 대한 갈망일 거다.
그런 갈망이 통하는 건
아마도 세 살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