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L293. 3부. 선택 후

하루의 윤리

by Mira



1. 하루의 질문


퇴사를 했다고 해서

하루가 곧바로 자유로워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자주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오늘은 어떻게 살 것인가.”


출근 시간이 사라진 자리에는

공백이 생겼고,

그 공백은 곧

윤리의 문제가 되었다.




2.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일하지 않는 하루는

쉽게 의심의 대상이 된다.


아무 생산도 하지 않은 날,

아무 결과도 남기지 않은 시간.

그런 날이 반복되면

나는 다시

스스로를 심문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하루를 채우려 했다.

의미로, 계획으로,

혹은 괜히 바쁜 척으로.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이건

회사에 다니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회사의 기준으로

하루를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3. 하루의 윤리는 생산성이 아니다


지금의 나에게

하루의 윤리는

얼마를 해냈느냐가 아니다.


• 누구의 속도로 살았는지

• 불안을 이유로 자신을 몰아붙이지는 않았는지

• 오늘의 선택이 공포에서 나왔는지, 판단에서 나왔는지


이 질문들에

하루가 대답할 수 있다면

그날은 실패가 아니다.




4.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에 대한 태도


회사에 있을 때

하루는 늘

누군가에게 보였다.


성과, 회의, 결과물.

그 시선들이 사라진 지금,

하루는 완전히

나 혼자의 것이 되었다.


그래서 더 어렵다.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에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는

결국

나만 알고 지나가게 되니까.


나는 이제

그 시간 앞에서

스스로를 속이지 않으려 한다.




5. 일하지 않는 시간의 최소한의 윤리


그래서 아주 낮은 기준을 세웠다.


• 불안을 핑계로

하루를 조급하게 밀어붙이지 않을 것

•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실패로 규정하지 않을 것

• 오늘의 나를

내일의 불안으로 평가하지 않을 것


이건 결심이라기보다

지켜보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6. 하루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지금의 하루는

앞으로의 삶을

예행연습하는 시간이다.


어떤 속도로 걷는지,

어디서 멈추는지,

무엇을 지나치지 않는지.


하루를 어떻게 쓰느냐는

앞으로의 인생을

어떤 윤리로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가장 작은 단서다.




7. 남기는 문장


나는 아직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른다.


다만

어떻게까지는

살지 않아도 되는지는

조금씩 알게 되고 있다.


그리고 그 감각을

매일의 하루 안에서

조용히 연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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