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소비의 품격

쓸 때는 기분 좋게, 통제는 타이트하게

by Mira


소비는 삶의 일부다.

지출 명세서는 그 사람의 취향과 가치관, 그리고 어떤 시간을 살아왔는지를 조용히 말해준다.


문득 지난 날의 소비를 돌아보니,

몇 가지는 선명하게 남는다.

그 소비들은 내가 나에게 해준 좋은 선물들이었다.


첫 월급을 모아 엄마에게 돌침대를 선물했다.

무려 3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엄마는 여전히 그 침대를 사용하신다. 당시 내게는 큰돈이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도 기특한 소비였다.


그 침대 위에는 나의 마음이,

그리고 그 시절의 애틋함이 놓여 있다.


빈티지 시계

고등학생 때부터 로망이었던 샤넬 빈티지 시계를

내가 나에게 선물했다.

작은 상자 안에 들어 있던 그 시계는

마치 오랜 시간 나를 기다려준 것 같았다.

서랍장 속에 고이 놓인 시계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그건 단지 물건이 아니라,

나의 오랜 기다림과 성과를 축하하는 시계가 되었다.


마흔을 기념해 떠난 알프스 트레킹.

2주간의 ‘뚜르 드 몽블랑’ 여정은 내 인생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소비였다. 이제는 시간도 체력도 마음도 그때 같지 않다.

그래서 더 귀하다.

그 여행은, 지나간 나를 응원하는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인테리어 리모델링

작년엔 오랜만에 큰 소비를 했다.

너무 낡아 불편했던 화장실과 부엌을 리모델링했다.

내가 매일 머무는 공간을 돌보는 일이

결국 나를 돌보는 일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명품 가방도 좋지만

나만을 위한 공간을 갖는다는 것도 근사한 일이다.


계절이 바뀌면 새 옷을 사는 일도 즐겁다.

프레시한 감각을 입고

한 계절을 기분 좋게 보낼 준비를 하는 것도

그 나름의 의미 있는 소비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기분 좋은 소비’가 ‘계획된 소비’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관리한다.


이번 달 지출이 예산을 넘었다는 신호가 머릿속에 켜지면 나는 조용히 셀프 긴축 모드로 들어간다.

무언가를 사는 일 만큼

소비의 균형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매월 정해진 저축과 투자금은 자동이체로 처리하고,

남은 금액 안에서 즐겁게 소비한다.


주말이면 아울렛이나 백화점 대신

좋아하는 카페에 간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맛있는 한 끼를 먹고

공원을 걷는다.

이런 시간이 나의 내면을 풍성하게 한다.


이제는 굳이 누구를 만나려 애쓰지 않는다.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 기쁨을 찾고,

나와 머무는 순간이 소중하다.


돈을 쓰는 방식은 삶을 대하는 태도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쓰려고 한다.

쓸 땐 기분 좋게,

그리고 통제는 타이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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