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은 자기 아바타를 부정하는 것일까?
짐 캐리가 우울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Depression is your body saying,
‘I don’t want to be this character anymore.
I don’t want to hold up this avatar that you’ve created in the world.’”
우울은 당신의 몸이 말하는 것이다.
이 캐릭터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세상 속에서 만들어낸 이 ‘아바타’를 더는 유지하고 싶지 않다고.
그는 친구의 말을 덧붙였다.
우울은 어쩌면,
깊은 휴식이 필요한 상태일지도 모른다고.
그럴까.
그런가.
쉰다는 건, 뭐지.
불면
오랜 불면증은
수면제를 필요로 했다.
술도 필요했다.
하지만
수면제와 술을 먹고도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많았다.
마치 뇌가
쉬는 법을 잊은 것처럼
꺼지지 않았다.
모두가 잠든 밤,
나는 깨어 있었다.
가만히 누워
어둠조차 보기 싫어
눈을 감고.
모두들 어디로 가는 걸까.
왜 나는 그곳에
같이 가지 못하는 걸까.
우울
우울이 깊어지면
몸을 움직이는 것부터 싫어진다.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
막상 만나면
어딘가 어긋난 에너지가 튀어나온다.
돌아오면
배터리가 다한 휴대폰처럼
다시 켜지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필요하다.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귀찮아지는 순간이 있다.
약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나를 향한 공격
가장 힘들었던 건
자기 자신을 향하는 공격이었다.
나의 쓸모를
하나씩 부정한다.
존재의 이유를
가볍게 비웃는다.
뭘 해도
안 될 거라고.
이 아바타를 부정하는 마음이
나를 향한 공격으로
돌아오는 걸까.
보이지 않는 병
우울을
MRI처럼 찍어서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수치로 보이지 않는 상태는
게으르다거나
의욕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로
쉽게 덮여버린다.
그 시간이
10년, 20년 이어지면
이건 더 이상
지나가는 상태가 아니라
정체성으로 굳어 버린다.
원래 에너지가 없는 사람,
원래 게으른 사람.
그렇게
스스로를 믿게 된다.
깊은 휴식
우울이
깊은 휴식을 필요로 하는 상태라면,
그 시간 동안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까.
억지로 쉬어도
기대처럼 고요하지 않고
조금은 거칠고,
불안했다.
쉰다는 것도
막막하다.
무엇을 하면서
이 시간을
견뎌야 하는 걸까.
물 위로
마치 수영을 하다가
호흡을 잊어버리고
물속으로 가라앉는 기분.
쉬운 방법은 없다.
빠진 그 자리에서
다시
물 위로 올라와야 한다.
그래서
약도 필요하고
상담도 필요하다.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는 의지도
필요하다.
며칠씩 침대에 누워 있다가
밖에 나가면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대로
다시 돌아가
눕고 싶기만 했다.
내가 찾은 방법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병을 인정하고
병원을 찾는 것.
약을 거르지 않는 것.
가라앉은 몸을
어떻게든 움직이는 것.
밖에 나갈 수 없으면
집 안에서라도.
침대와 방을
정리하는 것.
멀리 나가지 못하면
집 근처를
잠깐이라도 걷는 것.
지난 몇 년 동안
지키지 못한 날도 많았다.
그래도
놓지는 않았다.
요즘은
수영과 산책으로
이 상태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약의 양도
조금 줄었다.
우울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조금 덜 가라앉게 하는 방법을
하나씩
익혀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