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L320. 오후의 산책

a sense of enough

by Mira




작은 천을 따라 난 길을

강아지 조이와 함께 걷는다.


땅속에서 올라오는 봄 냄새에 홀린 듯

조이는 자꾸 멈춰 선다.

코를 박고, 앞발로 흙을 긁고,

무언가를 오래 맡는다.


나는 재촉하지 않고 기다린다.

걷기보다 기다림이 더 긴 산책이다.


생후 5개월 된 조이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망설임 없이 다가간다.

코를 내밀고 냄새를 맡고, 다정하게 인사를 건넨다.


마치 오래전에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난 것처럼,

온몸을 반가움으로 흔든다.


사람들은 그 천진한 모습에 웃는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가볍게 인사를 나눈다.


다른 강아지를 만날 때도 비슷하다.

조이는 먼저 다가가지만,

대부분은 별 관심 없이 제 갈 길을 간다.


그럴 때 조이는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서서

멀어지는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앞으로 걷는다.


작은 천에는

개구리도 살고, 오리도 산다.


오리 가족이 물 위로 올라와

털을 고르고, 서로를 바라보며 한참을 머문다.


가끔은 날개를 크게 펴고

꽤 멀리까지 날아간다.


오리가 저렇게 잘 날아간다고.


처음 보는 장면에

나와 조이는 나란히 발걸음을 멈춘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바라본다.


산책이 한 시간을 넘기면

나는 벌써 지친다.

다리는 느려지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한다.


그런데 조이는

여전히 넘치는 에너지로

더 놀고 싶어 한다.


풀 냄새를 맡고,

땅을 헤집고,

풀더미 속으로 몸을 던진다.


따뜻한 봄 햇살과

아직은 찬 기운이 남아 있는 바람.


살짝 숨이 차도록 걷고 나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더 바랄 게 뭐가 있을까.


생각했던 것보다

퇴직 후의 생활에는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산책하기 좋은 조거 팬츠와 운동화,

가벼운 윈드점퍼와 모자.


그리고

산책 후에 마시는 커피 한 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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