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인생 컨셉 잡는 중입니다
30년 동안 월급쟁이로 살았다는 건
오랜 시간 동안 남이 시키는 일을 하고,
남이 내리는 평가를 받고 살았다는 뜻이다.
그것에 순응하는 마음이 있어야 조직생활이 평화롭다.
그런데 그게 어느새 삶의 방식이 되어버리더라.
언제부터인가 혼자 있는 시간이 불편했다.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걸 느꼈다.
누군가의 오더로 시작되고,
누군가의 컨펌으로 일이 끝나는 하루.
그 수동적인 삶이 너무 싫었다.
그런데 막상 혼자 있으면,
무엇을 해야 하나?
막막하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언제부터인가
주말이 되면 출근하지 않는 시간이
행복한 게 아니라 불안했다.
일하고 있는 나와
일하지 않는 나 사이의 간극에서
파열음이 생긴다.
유기동물의 작은 쉼터
신입사원 시절엔 디자인하는 일이 정말 재미있었다.
“이렇게 재미있는데, 돈까지 준다고?”
하지만 끝도 없이 이어지는 수정 요청,
의미 없는 반복 업무에 지치면서
“이젠 더 이상 디자인하고 싶지 않다”
는 생각에 이르렀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나는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그들과 교감할 때, 순수한 기쁨을 느꼈다. 지금도 인간과 동물 사이의 종을 뛰어넘는 유대관계를 보면 감동받는다.
그리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했다.
여럿이 몰려다니는 것보다,
한두 명과 진솔하고 내밀한 대화를 나누는 걸 좋아했다.
내가 20대이던 시절, IMF가 터졌다.
사람들도 힘들었지만
그보다 더 약한 존재들—
길에 버려진 유기견과 유기묘가 많아졌다.
그 아이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돈도 없던 학생 시절,
아이들을 데려와 돌보기 시작했고
직장인이 되어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자
본격적으로 유기동물을 보살폈다.
점심시간에 택시를 타고
아픈 유기묘를 데리러 간 적도 많다.
그런 일은 내게 아무 경제적 도움이 되지 않지만,
그 아이들을 돕는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60대 나의 하루
오전 8시, 쉼터로 출근한다.
커피와 샌드위치,
그리고 아침을 여는 피아노 연주.
신문을 본다.
주요 기사를 스크랩하고
관련 주식을 찾아 포트폴리오를 점검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료를 주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강아지들과 아침 산책을 한다.
오후 3시까지는 입양 관련 업무를 하고,
그 후 2시간은 오롯이 글쓰기에 집중한다.
저녁을 챙겨주고
강아지들과 한 번 더 산책하고 퇴근.
퇴근 후엔 맥주 한 잔과 넷플릭스.
그리고 조용히 잠든다.
나는 시시한 일상이 좋다
너무 평범해서 심심할까?
나는 그런 평범한 일상,
별일 없는 나날들을 평화롭게 보내는 것을 사랑한다.
많은 것을 잃고 나면
가장 그리운 건 그런 보통의 하루더라.
멀리 떠난 여행의 순간이 아니라
매일 하던 일들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여력이 된다면, 그 아이들을 돕고 싶다
나는 <자립 준비 청소년>을 돕는 일도 하고 싶다.
부모의 아낌없는 지원 속에서 자라도
막상 사회에 나가 독립하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그런 지원조차 없는 아이들이
막막한 시간을 마주할 때
얼마나 두렵고 외로울까.
한 달에 한 번, 쉼터에 모여 청소하고
동물들을 케어하며
함께 밥을 먹는 것부터 시작한다.
고민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큰 결정을 앞둔 아이 옆에서
조용히 응원해 주는 어른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입양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하고,
포스터를 만들고,
세상에 알리는 일도
같이 해보면 좋겠지.
두 번째 인생 슬로건
누군가에게 작게라도 도움이 되는 인생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나이가 들어
자신의 인생에서 의미를 찾고 만족하게 되면,
젊은 날의 상처나 결핍도
흥미로운 성장 스토리가 된다.
심플하고,
담백하고,
즐겁게.
“명랑부자 할머니”
내 두 번째 인생의 슬로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