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준비생
40대로 접어들면서 퇴직 후의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지만 막연했다. 대학을 가기 위해 최소 12년을 준비했는데, 도대체 정년을 위해서는 무엇을, 얼마나 준비해야 하나?
왜 학교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을까.
사회에 나가서 독립적이고 경쟁력 있는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준비였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학교는 지겨웠고, 사회는 두려웠다."
그래도 내 성격이 "두려우면 숨는다"가 아니라,
"에이, 뭔데?"
하고 부딪혀 보는 편이라 대학 때부터 디자인 관련 아르바이트나 공모전을 많이 했었다. 실패하고 거절당하면서 우울하기도 하고 미래가 불안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멧집"을 키웠다.
그 시절의 자산으로 남은 것은 "포기하고 싶은 걸 어떻게든 끝까지 마쳤다"는 경험이었다. 좀 미련할 정도로 일에 매달렸던 시간이 큰 성과로 당장 보이지 않아도 내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때의 나에게 고맙다, 포기하지 않아 줘서.
회사원 30년 차, 자격지심과 생존력 사이
나는 고작해야 기업의 디자이너일 뿐이라는 자괴감으로 힘든 날도 많았다. 본인의 이름과 브랜드롤 걸고 성공한 디자이너들을 보면 부럽고 자격지심이 들었다. 나 보다 어린 나이에 승진 가도를 달리는 후배들을 보면 내 인생은 망작 같았다.
그래도 히키코모리 DNA를 극복하고 프로 출근러가 되어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특한가. 회사에서 출세는 못했어도 현업에서 밀리지 않는 실무자잖아.
내가 언제까지 이 회사에 다닐 수 있을까?
30대에는 어떻게든 회사를 벗어나 나의 커리어를 만들고 싶어서 몸부림을 쳤는데, 제대로 성공하지 못하고 마흔이 넘어서도 사원증 달고 사는 게 서글프기도 했다.
그런데 회사마저 다니지 못하게 되면
"나에게는 뭐가 남을까?"
답을 찾지 못해서 진땀만 나는데, 일상에 소진되어 너무 먼 미래를 미리 걱정하는 건 아닌가? 하며 회피하기도 했는데, 어느새 정년퇴직 D-4년 6개월.
내가 나에게 주는 월급
그동안 일과 소득을 동시에 추구했다면 은퇴 후에는 내가 나에게 주는 월급을 만들고 "정말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쓰자"라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 연금과 퇴직금, 부동산, 주식의 조합에 최선을 다 해야 한다.
퇴직금, 안전할수록 좋은 걸까 잠든 돈을 깨워야 할까?
. 직접 투자를 하다가 오히려 손실이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퇴직금은 DB형으로 두었다. 투자라는 개념이 없을 때는 <퇴직금> 이 얼마나 되는지 관심도 없었고.
그런데 투자와 돈, 인플레이션에 대해 알고 나서는 돈이 일을 하지 않고 잠만 자는 걸 가만 두고 볼 수가 없다. 어떻게든 깨워서 나와 함께 일 하도록 만들어해야 했다
인플레이션의 가속화
투자 손실도 속상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가속화되는 인플레이션이 더 무섭다.
DB형과 DC형의 차이를 알아보자.
-DB형(확정급여형)
:회사가 정해진 퇴직금을 근로자에게 안전하게 지급하기 위해 예금으로 운영
-DC형(확정기여형)
회사가 퇴직금을 계좌에 적립하고 근로자가 직접 운용하는 방식으로 수익이 날 수도 손해가 날 수도 있음
나에게 무엇이 맞는 방식인지 생각해 보았다. 물론 투자개념이 없을 때는 나도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DB형으로 운용했는데, 어느 정도 투자를 해 보니 긴 시간에 대한 복리 효과를 볼 수 있는 상품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짜서 DC형으로 전환했다.
퇴직금은 일시불 vs 연금?
40댜부터 시뮬레이션한 결과, 적어도 퇴직금으로 베팅하는 선택은 하지 않기로 했다. 중간에 한번 정산받았기 때문에 금액이 크지는 않지만.
연금으로 전환해서 안정적인 월수익으로 받기로 했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는 투자에서 조금 손실이 나도 해결할 수 있지만, 은퇴 후의 손실은 회복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보수적으로 다루기로 했다.
우리는 대학을 가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하고 각종 모의고사를 본다. 그 점수로 내 실력을 확인하는 것처럼 연금수령액을 미리 보기 함으로써 은퇴 후 나의 경제 상황을 가늠할 수 있다.
은퇴설계 핵심은 리밸런싱과 시뮬레이션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의 일부는 퇴직 전에 매도해서 연금상품, 성장주로 나누어서 재분배할 계획이다.
연금은 세제 혜택을 위해서고 성장주는 아직도 폭발성이 있는 게임 체인저 기업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상용화되고 휴대폰이 필수템이 되었듯이
우리의 생황을 바꿔 놓을 게임 체인저 산업은 여전히 발전하고 있다. 그게 AI혁명일 수 있고 로봇의 상용화일 수도 있다.
만약 집마다 TV가 있고 세탁기가 있듯이 가정용 로봇이 개발된다면?
1. 전력주
2. 반도체
3. 카레라 렌즈
AI와 로봇 산업에 필수적으로 수요가 생길 섹터를 연상하고 관련 주를 찾거나 ETF를 찾아서 보초를 세우기를 반복한다.
자영업에 관심이 있다면?
퇴직금을 가장 빠르게 말아먹는 방법이 경험과 경쟁력 없이 치킨집과 카페를 차리는 거다. 실제 매장에서 일해본 경험도 없이, 다른 집과 차별화되는 레시피나 서비스 전략도 없이 그냥 차려 버린다. 퇴직금을 신나게 쓰면서.
그렇게 오픈하고 나서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눈물의 폐업을 하는 사장님들을 수도 없이 많이 봤다. 왜 이런 일이 세대를 거쳐 반복될까?
나도 카페나 동네 작은 빵집을 보면서
"한번 해볼까?"
한 적이 있었다.
그 생각을 주말 최저시급 아르바이트로 실행했다. 주방이 돌아가는 시스템과 운영 방식, 손님들의 반응, 재고처리와 원료비, 인건비, 월세 등을 시뮬레이션해 보고 조용~히 그만두었다.
서비스 소매업은 사장의 몸을 갈아 넣는 일이다. 그에 비해 월세와 인건비를 내면 나면 막상 수입은 그렇게 많지 않겠더라. 남들과 차별화되는 무언가가 없으면 그냥 자기 몸만 계속 갈아 넣는 거다.
그에 비해 초기에 들어가는 창업 비용은 만만치 않다.
권리금+ 보증금+인테리어만 계산해도 1억은 우습게 사라진다.
주택연금
퇴직을 하면 그동안 살았던 집의 위치가 꼭 여기가 아니어도 되는 경우가 있다. 좀 더 저렴한 곳으로 이사하고 차익금으로 생활비를 준비하는 경우도 많다.
나는 두 가지 경우로 시뮬레이션해 보았다.
1. 현재 집에 살면서 주택연금을 받는다.
2. 현재 집을 매도 후, 그 차익금을 연금화 하고 저렴한 지역으로 이사한다.
아직 결론을 내지 않았지만 두 카드 모두 유효하고 내가 예측하지 못한 변화구가 들어왔을 때 플랜 B로 바로 적용할 수 있다.
나는 회사 업무를 하면서도 항상 플랜 B를 설정하는 버릇이 있는데, 아마 남들보다 불안도가 높기 때문 일 거다. 예측하지 못한 변화구 앞에서도 쫄고 싶지 않다.
사회 초년생일 때부터 <퇴직>에 대한 생각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현실은 이제 누구도 한 회사에서 정년까지 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것, 이직을 할 수도 있고 창업을 할 수도 있다.
원하지 않아도 더 이상 급여 생활이 아닌 1인 사업을 하게 될 시점이 온다. 60세에 정년하고 그때부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살기는 더 어렵다.
두 번째 커리어의 밑바탕이 되는 퇴직금 관리와 계획을 구체적으로 시뮬레이션하고 나의 상황에 맞게 리밸런싱 하는 걸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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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에서는 <두 번째 나의 일>, 제가 꿈꾸고 준비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