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학번 캠퍼스 LOVE STORY③

-경계 - ③ 해인이의 이야기

by 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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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녀석 또 지온이 옆에 있네."

언제부턴가 신경쓰이는 녀석이 생겼다.

나도 1학년 때야 어차피 군대 갔다와서 잘 하면 되지 하고 마구 놀아대긴했지만

저 녀석도 1학년은 버린건가?

지 친구들은 아까 도서관 가더만 지 혼자 동방에서 죽치고 앉아있다.

지온이는 졸업반이라 채울 학점이 얼마 없어서 수업이 확실히 줄었다.

대학 들어오자 마자 3월부터 일찌감치 CC가 된 우리지만 1학년 때를 제외하면 2학년 때 입대후 전역하고 돌아오니 지온이는 이미 4학년이다.

그것도 지온이가 1년 휴학을 해서 졸업반때라도 일년 같이 학교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인데,

이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내기가 현실적으로 힘들어지긴 했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널널한 지온이는 예전만큼 놀아주지 않는다고 툴툴거릴 때가 많아져서 곤란했는데,

마침 이번에 동아리 가입한 1학년 새내기들이랑 죽이 잘 맞아 어울려 다닌다.


며칠전에도 지온이는 벚꽃 구경 가자고 졸라댔지만 지금의 나로선 쉽지 않았다.

1학년 때 학고 맞은 거 매꾸느라 재수강까지 빼곡히 채워진 시간표 쫓아가며 살기도 숨이 찬데,

엄마한테 학비 지원해달라고 손 내밀기도 부끄러운 나이라 장학금 또한 놓칠 수 없어져 버렸다.

동기놈들도 같은 생각인지 전과 다르게 핏발 세워가며 공부한다.

군복무로 공부에서 손 뗀지가 오래되다 보니 영 예전처럼 머리가 휙휙 돌아가지도 않고..

학교생활에 다시 적응하는 것이 1학년 때보다 더 뻑뻑하게 느껴지고 피로감이 몰려드는 4월이다.


"아직 중간고사 기간인데 왠 벚꽃구경이냐.. 애냐? 그냥 캠퍼스 둘러봐, 여기도 꽃 많아."

"꼭 시험기간에만 만발했다가 끝나면 다 지고 없던데, 너 기다리다가 벚꽃이 남아있느냐고 글쎄!,

코 앞이 어린이대공원인데 혼자라도 갈거야! 그런 줄 알아!"

그러곤 또 휙 돌아선다. 동기놈들이 뒤에 서서 기다린다.

"야, 안가? 우리끼리 가?"

"야! 내가 벚꽃 본드로 붙여 놓을테니까 시험 끝나고 가자. 어? 알았지?"

뒤 돌아서 가는 지온이 뒷통수에 큰 소리로 한 마디 던져놓고 나도 친구놈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지온이 또 삐졌냐?"

"아냐, 새꺄. 가자"

전산실에 앉아서도 마음이 불편하다. 누군 놀고 싶지 않아서 그러냐고..

나도 이 시간을 이렇게 실없이 보내는 게 안타깝지만

졸업해서 너가 학교에 없다고 해도 내년에도 너는 항상 내 곁에 있을 사람인데..

지온이가 지금 나의 급한 사정을 이해하고 봐주지 못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자 서운한 마음까지 들려한다.

진짜 지금은 눈코 뜰 새가 없단 말이다.

이런 걸 시시콜콜 설명하는 것도 우리 사이에 구차하고. 그냥 알아서 이해해주면 안되나..

에잇. 저러고 갔어도 또 헤실 헤실 웃으며 전화하겠지 머..

담에 한 번 진지하게 말해보지 머.

레포트라도 빨리 하고 저녁에 짬좀 내서 만나야겠다.

빨리, 빨리, 빨리하자는 마음이 커지고 조급해질수록 과제 마무리의 진전은 느려지고 내 맘은 초조해진다.

겨우 마쳐서 제출하고 세 시간짜리 강의 들어갔다 나오니 6시다.

지온이가 아직 학교에 있으려나?


'어디냐? 나 수업 끝났어'

"동방! 일루 와"

아. 다행이다. 그 새 화가 풀렸나 보다. 목소리가 밝네.

복도 끝에 있는 동방인데도 계단을 오르자마자 경쾌하게 울리는 시끌거리는 소리의 근원이 우리 동방인게 분명하다. 늦은 시간에 먼 일이래?

1학년 재민이, 성우, 준수가 지온이 뒤에 서서 컴퓨터로 사진을 보고 있다.

1학년 사내녀석들 자그마치 9명이랑 벚꽃보러 어린이 대공원에 가서 사진까지 찍어갖고 와서 정리하고 있는지온이다.

아주 놀기로 작정한 1학년 놈들이랑 시간 많아 널널한 졸업반 누나랑 제대로 일탈을 하셨구만.

나라도 1학년 때 저리했겠지.. 그땐 지온이와 나와 둘이서 다녀왔었었지.

하여튼 노는 거 좋아하고 충동적이고 꽃 좋아하는 건 그 때와 똑같은 지온이구나.

못 말리는 에너자이저 지온이는 결국 나 빼고 다녀왔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신이 나있다.

다행이다. 내가 못 놀아준거 후배 놈들이 대신 놀아주기라도 해서.

동방에 들어서며 지온이를 확인하고 휘 둘러보는데 딱 걸렸다, 너.

쇼파에 앉아있는 민혁이는 지온이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인사하는 게 아니라 얼굴을 돌린다.

뭐지?

저녀석이 저런 눈으로 지온이를 보는 게 당연히 싫다.

질투다. 저 어린 후배놈에게.. 내가 미쳤나?

지난 4년간 지온이와 나의 세계엔 그 누구도 불만이 없었고, 우리 둘은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연인이었다.

아무도 끼어들 수 없다고 암묵적으로 확고하게 인정받고 있는 있는 우리였다.

그래서 누군가 지온이에게 나보다 더 특별하게 대하고 더 다정하게 대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런 감정이 너무 낯설고 당혹스럽다.


저 녀석이 신경쓰이기 시작한 건 며칠 전 지온이와 호프집에서 나온 걸 본 때문일거다.

지온인 나와 단 둘이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

술이 싫다고도 했고, 뭔가 내 속 마음을 표현해 보려고 술을 마시러 가자 해보고 싶은 날도

예전에 "맨정신으로 못하겠으니까 술힘 빌려서 말해 보려는 사람은 최악아니냐? 하물며 다음날 기억조차 못하는 거 보면 진짜 한심해"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아서 쉽게 권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민혁이 녀석, 재주도 좋다. 그런 지온이와 대낮에 대작을 하다니 ..

지온이가 남자와 단 둘이 술 마신게 기분나쁘기 보다 민혁이에게 질투내는 내 자신이 짜증난다.

어주? 단둘이 찍은 사진도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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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온이가 마우스를 연신 눌러대는 중에 민혁이와 둘이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우리 둘이.. 올 해 같이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구나.


복학한 후 첫 학기라 너무 바쁘다는 핑계만 댔지만 정말 내가 너무 소홀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유치하지만 마우스를 쥐고 있는 지온이 손을 잡아 일으켰다.

(동아리 후배들 앞에선 이렇게 손 잡은 적은 4년 여태 한 번도 없었는데 나도 좀 이상해지나 보다)

"나가자, 애들 밖에 기다려" 보란듯이 지온이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일단 데리고 나왔다.

"야, 나 이거 아직 끝까지 못봤는데?. 얘들아 안녕~~"

그런데..

나오는 우리에게 넙죽 절을 하며 '안녕히 가십시오' 하는 후배 녀석들 사이에서 민혁이 혼자 고개 숙이고 기타줄만 튕기고 있는게 눈에 보인다. 아.. 신경쓰이네 저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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