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을 추구하는 삶, 괜찮을까?
40년 가까이 지역 불우이웃을 돕는데 인생을 다하고 계신 한 목사님 노부부를 뵌 적이 있다. 어떻게 그렇게 의미 있는 일을 하시는지 여쭈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너무나 명쾌했다. "그냥, 좋아서 해요. 재미있어서."
좋아서, 재미있어서 한다는 건 즐거움을 추구하는 쾌락주의 일텐데 이 목사님 부부께 '쾌락주의'라는 말을 사용하기가 죄송스러운 이유는 뭘까.
'쾌락'은 한자어로 快樂 [상쾌할 쾌, 즐길 락]으로, '쾌락주의'는 사전에서 '쾌락을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의 목적이라 생각하고 모든 행동과 의무의 기준으로 보는 윤리학의 입장'으로 정의한다.
그럼, 이러한 쾌락주의는 위험한 것일까?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아리스티포스, 에피쿠로스 학파에서 다루는 '쾌락'이 철학사적으로 어떤 종류의 쾌락을 의미하는지를 떠올리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쾌락주의'라는 단어에 '육체적 쾌락'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쾌락주의가 그러한 육체적, 혹은 정신적 즐거움만을 최고의 목적으로 한다고 생각하니 부정적인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 실제로 쾌락만을 좇는 쾌락주의는 결국 파멸을 가져올 뿐임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책임감 있는 쾌락주의의 삶이라면 어떨까.
가령, 각각 피아노 연주와 컴퓨터 게임에 매료된 두 젊은이가 있다고 가정하자.
쾌락의 대상이 ‘피아노 연주’인 친구는, 다른 일은 뒷전이고 하루 종일 피아노만 칠 것이다. (이 글에선, 그렇게 피아노를 연습하면 결국 유명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다는 식의 희망적인 미래는 그리지 않는다. 그건 그 사람의 타고난 재능, 운과 함께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 될 테니)
그런 이의 미래는 어떨까. 본인에게 쾌락이 따르지 않는 다른 생활은 돌아볼 여력이 없을 테고, 생활고 ·인간관계의 어려움 등을 겪다가 결국 타락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반면, 컴퓨터 게임에 매료된 친구는 책임이 따르는 쾌락을 추구한다. '컴퓨터 게임'이라는 쾌락을 누리기 위해서는 직장에서 하기 싫은 일을 하고, 불편한 상사와도 관계가 틀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는 순간적인 쾌락이 아닌, 지속적인 쾌락을 위한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본인의 다른 생활은 돌아보지 않는 24시간 쾌락만을 추구하는 삶, 또는 윤리·사회·법적으로 비탄받거나 금지된 일을 목표로 삶는 잘못된 쾌락이 아니고선 쾌락의 대상이 무엇이 되었건 나쁘지 않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추구하는 쾌락이 그 사회에서 칭송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이의 사적인 쾌락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는 단지 쾌락의 대상이 당시 사회적·시대적 배경에 필요한 활동이었을 뿐이지, 이는 시대 혹은 사회적 배경이 달랐다면 칭송의 여부도 달라졌을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목사님 내외분을 비롯하여 폐지 수집으로 모은 돈을 모두 기부하는 할머니, 주인 잃은 떠돌이 개를 수십 마리씩 키우는 사람들.
그들은 모두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게 아니다. 그 활동을 통해 느끼는 순수한 기쁨과 즐거움, 즉 쾌락 때문에 계속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회적 이익을 동반하는 쾌락이라면 더욱 좋겠지만, 비록 사회적 이익이 없는 쾌락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책임감 있는 쾌락주의'의 추구는 지향해도 좋지 않을까.